2025년 7월 23일 : 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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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지금

작고 소중하고 속수무책의 감동

이기호 작가가 '이시봉' 이야기를 출간할 예정이라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어쩐지 낯설지 않았습니다. 그의 소설에서 이 이름이 여러 번 사용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 작가가 함께 살고 있는 강아지의 이름 역시 이시봉이라고 합니다. 11년 만에 출간되는 이기호의 장편소설에 강아지 이시봉도 손도장을 찍어 힘을 보탰습니다.

주노 디아스의 소설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의 변주로 보이는 이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도 이 이야기가 이런 식으로 흘러가게 될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명랑한 강아지 이시봉은 청년 이시습을 이 세상에 붙들어 놓는 거의 유일한 존재입니다. 피자집을 운영하던 아버지가 가게 앞에서 무단횡단을 하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이후 이시습은 술에 의지하고, 산책을 제때 나가지 못하는 이시봉의 몰골도 이시습처럼 꼬질해졌습니다. 한편 엄마는 아빠가 전 직장 노조 친구에게서 받아온 이 강아지 이시봉을 미워하게 됐습니다. 뛰쳐나간 이시봉을 잡으려다 아버지가 무단횡단을 해 교통사고를 당한 것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시봉은 자신을 미워하는 인간을 향해서도 명랑합니다. 도로교통법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이 가정에서 자신에게 밥을 주는 인간 여성이 왜 갑자기 차가워졌는지 모르면서. 이 모르는 자의 천진함은 눈물겹습니다. + 더 보기

123쪽 : “사랑은 예측 불가능한 일을 겪는 거야.”
아빠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강아지를 사랑하는 건 더 그래.”

작가는 지금 _3문 3답

Q : 첫 소설집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선자 씨의 기적의 공부법>의 '선자 씨'는 시장 입구에서 장사를 하다 너무 덥고 너무 추워 바깥 일을 하기 어렵게 되어 요양 보호사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게 된 인물인데요, 이렇듯 기후 위기로 인해 일하기 어려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종종 들리는 여름입니다. 이 여름 첫 소설집을 갓 낸 소설가는 어떻게 일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A : 첫 소설집이 출간된 날은 무척 습하고 더웠는데요. 지금은 비가 무섭고 사납게 내리고 있습니다. 하늘이 노란 것이 꼭 멸망 직전의 지구처럼 보입니다. 이런 날씨에는 자연히 걱정이 따릅니다. 누군가는 이 비를 다 맞고, 또 하루는 더위를 온몸으로 받으며 일하고 있겠지요.

저는 창밖의 비를 보면서, 그러니까 안전한 곳에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나 혼자 안전한 곳에 머문다는 생각이 스칠 때, 풀어내기 어려운 슬픔을 마주합니다.

올여름은 부디 모두에게 무사한 여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안전하길 바라는 마음은 때로 지나치게 유약하고 터무니없이 낙천적인 것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연약한 마음을 뚫고 그럼에도 모두가 안전하길 빌면서, 그런 세계가 내가 살아가는 지구이길 바라면서 저는 이 여름에도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이 마음이 깎여 나가지 않기를 바라면서요. +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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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MD는 지금 스마일

2025년 7월 중순 반가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박술 & 울리아나 볼프의 번역으로 출판사 피셔에서 출간한 <죽음의 자서전>의 독일어판이 아시아인 최초로 2025 국제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2019년 김혜순은 이 시집으로 캐나다 그리핀 시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김혜순의 죽음 3부작을 합본으로 엮은 <김혜순 죽음 트릴로지>가 2025년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최초 공개되었습니다. 제의를 치르는 듯한 붉은 면의 일러스트, 1권 <죽음의 자서전>이 인쇄된 검정면에서 시작해 2권 <날개 환상통>의 회색면을 지나 3권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의 흰 종이로 밝아오는 책의 모양 역시 아름다워 한 권씩 품어볼 만한 시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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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는 지금 : 레제

레제에서 배수아 작가의 소설 개정판 4종―『철수』, 『이바나』, 『동물원 킨트』, 『독학자』―이 출간되었습니다. 1998년부터 2004년 사이에 처음 선보인 이 소설들은, 출간 당시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낯설고 독특한 매력이 단연 돋보이는 작품들이었습니다.

등단한 지 만 삼십 년이 지났지만, 배수아는 여전히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독보적인 작가입니다. 처음 맞닥뜨리는 그의 작품은 낯설고 불안하고 불온하며 이질적이고 또 불길해서 오히려 쉽게 매혹당하고, 얼핏 그 독보적인 스타일만을 이야기하기 쉽지만, 깊숙이 들여다보면 이만큼 예민하고 섬세하게 한 인간의 내면을 끄집어내 보일 수 있을까 갸웃거리게 합니다.

지금은 오히려 과거가 되어버린, ‘새천년―밀레니엄’이라는, 알 수 없는 기대와 걱정이 한데 섞여 혼란스럽기까지 했던 그 시절과 2025년 현재의 ‘배수아’라는 텍스트를 떠올릴 때 작품들은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그 시절의 저 낯섦은 지금도 여전히 한없이 새롭고, 작품 속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묘하게도 지금의 작가와 겹쳐집니다. +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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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 읽는 여름밤

한예리, 김설진 주연 영화 <봄밤>이 2025년 7월 개봉했습니다. 13회 무주산골영화제 뉴비전상을 수상하기도 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각각의 계절> 권여선의 '주류 문학' <안녕 주정뱅이>(2016)에 수록된 첫 작품 '봄밤'을 원작으로 한 영화입니다. 영경과 수환의 12년 간의 사랑을 영화는 67분에 담아 냈습니다. 알코올중독자 영경과 류머티즘 환자인 수환은 친구의 결혼식장에서 처음 만났고, 영경은 수환이 등을 내민 순간 영경은 아직 자신 몫의 행운이 남아있다는 것에 놀랍니다.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영경은 작게 읊조렸다.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울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영경은 자신의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것을 알지 못했다.

소설의 영경처럼 영화에서 영경을 맡은 한예리 배우도 수환의 등에 업혀 김수영의 <봄밤>을 읊습니다. 영화를 보고 모처럼 권여선의 소설을 다시 읽어보았는데요 새삼 사무치고 참 좋았습니다. 한예리 배우의 음성처럼 느릿하게 김수영의 시와 겹쳐 <봄밤>을 읽는 밤을 권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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