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2일 : 5호
이렇게 살 것 같다 평생을
<나는 잠깐 설웁다>로 서러움의 시기를 노래한 허은실 시인의 두번째 시집을 소개합니다. '십일월'이라는 시는 '언젠가 한 번 이 냄새를 살았던 것 같다'는 자각으로 시작됩니다. 서늘한 한 해의 끝, '슬픔은 가장 거친 옷을 입'(<회복기 2> 중)고 함께 다가와 서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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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잠깐 설웁다>로 서러움의 시기를 노래한 허은실 시인의 두번째 시집을 소개합니다. '십일월'이라는 시는 '언젠가 한 번 이 냄새를 살았던 것 같다'는 자각으로 시작됩니다. 서늘한 한 해의 끝, '슬픔은 가장 거친 옷을 입'(<회복기 2> 중)고 함께 다가와 서는 듯합니다.
시는 '영두'의 죽음을 기억합니다. '영정 곁에 꽃 장식도 없었지 / 테이블이 네 개뿐인 빈소 / 그런 게 미안했지 / 우리끼리만' (<영두의 난간> 중) 창문에서 창문을 넘나들었던, 한 에어컨 설치기사의 장례식장에서 우리는 틀림없이 눈을 마주했을 겁니다. 그 눈빛을 기억하는 것이 이제 우리가 할 일일 것입니다. 시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우리는 서로의 눈빛에 책임이 있어요' (<반려> 중)
이번 호 작가 인터뷰와 출판사 인터뷰는 참사 소식이 전해지기 전 진행된 점을 말씀 올립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알라딘 한국소설/시 MD 김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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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쪽:
가지 마
이승에 신을 숨기는 아이들아
칼을 생각하면
칼은 어디로
사라지고
<칼과 신> 중
Q : 외워두고 기억하고 싶은 문장이 많습니다. 신작에 수록된 「난주의 바다 앞에서」의 "하지만 그들에게는 두번째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가 저는 참 좋았는데요. 이 소설집에서 낭독을 한다면, 어떤 단락을 읽고 싶을지 궁금합니다.
A :
「바얀자그에서 그가 본 것」에 나오는 아래의 문장들입니다. 제가 소설의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그 이야기 때문에 울었다고?”
“글쎄. 난 세상은 점점 좋아진다고 생각해. 지금 슬퍼서 우는 사람에게도. 우리는 모든 걸 이야기로 만들 수 있으니까. 이야기 덕분에 만물은 끝없이 진화하고 있어. 하지만 난 비관주의자야. 이상한 말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세상을 좋은 곳으로 만드는 데 비관주의가 도움이 돼. 비관적이지 않으면 굳이 그걸 이야기로 남길 필요가 없을 테니까. 이야기로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인생도 바꿀 수 있지 않겠어? 누가 도와주는 게 아니야. 이걸 다 우리가 할 수 있어. 우리에게는 충분히 그럴 만한 힘이 있어. 그게 나의 믿음이야. 하지만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순간은 찾아와. 그것도 자주. 모든 믿음이 시들해지는 순간이 있어. 인간에 대한 신뢰도 접어두고 싶고,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을 것 같은 때가. 그럴 때가 바로 어쩔 수 없이 낙관주의자가 되어야 할 순간이지. 아무리 세찬 모래 폭풍이라고 할지라도 지나간다는 것을 믿는, 버스 안의 고개 숙인 인도 사람들처럼. 그건 그 책을 읽기 전부터 너무나 잘 아는 이야기였어.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에게 수없이 들었던 이야기이기도 하고, 지금도 책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야기이기도 하지. 그분들은 왜 그렇게 했던 이야기를 하고 또 할까? 나는 왜 같은 이야기를 읽고 또 읽을까? 그러다가 문득 알게 된 거야, 그 이유를.”
“이유가 뭔데?”
“언젠가 그 이야기는 우리의 삶이 되기 때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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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외워두고 기억하고 싶은 문장이 많습니다. 신작에 수록된 「난주의 바다 앞에서」의 "하지만 그들에게는 두번째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가 저는 참 좋았는데요. 이 소설집에서 낭독을 한다면, 어떤 단락을 읽고 싶을지 궁금합니다.
A :
「바얀자그에서 그가 본 것」에 나오는 아래의 문장들입니다. 제가 소설의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그 이야기 때문에 울었다고?”
“글쎄. 난 세상은 점점 좋아진다고 생각해. 지금 슬퍼서 우는 사람에게도. 우리는 모든 걸 이야기로 만들 수 있으니까. 이야기 덕분에 만물은 끝없이 진화하고 있어. 하지만 난 비관주의자야. 이상한 말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세상을 좋은 곳으로 만드는 데 비관주의가 도움이 돼. 비관적이지 않으면 굳이 그걸 이야기로 남길 필요가 없을 테니까. 이야기로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인생도 바꿀 수 있지 않겠어? 누가 도와주는 게 아니야. 이걸 다 우리가 할 수 있어. 우리에게는 충분히 그럴 만한 힘이 있어. 그게 나의 믿음이야. 하지만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순간은 찾아와. 그것도 자주. 모든 믿음이 시들해지는 순간이 있어. 인간에 대한 신뢰도 접어두고 싶고,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을 것 같은 때가. 그럴 때가 바로 어쩔 수 없이 낙관주의자가 되어야 할 순간이지. 아무리 세찬 모래 폭풍이라고 할지라도 지나간다는 것을 믿는, 버스 안의 고개 숙인 인도 사람들처럼. 그건 그 책을 읽기 전부터 너무나 잘 아는 이야기였어.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에게 수없이 들었던 이야기이기도 하고, 지금도 책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야기이기도 하지. 그분들은 왜 그렇게 했던 이야기를 하고 또 할까? 나는 왜 같은 이야기를 읽고 또 읽을까? 그러다가 문득 알게 된 거야, 그 이유를.”
“이유가 뭔데?”
“언젠가 그 이야기는 우리의 삶이 되기 때문이지.”
Q : 이 소설집과 어울릴 분위기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소설집과 함께하기 좋은 계절, 같이 듣기 좋은 음악, 함께 여행하기 좋은 장소, 같이 읽기 좋은 책 등에 대해 추천해주실 수 있을까요.
A :
이 책을 읽는 계절은 지금이 제일 좋겠네요. 지금 제가 좋아하는 세 명의 뮤지션은 전진희(하비누아주)와 윤지영(TRPP)과 신온유(신인류)입니다.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을 쓸 무렵, 산책할 때면 늘 들었던 가수들입니다. 혹시 모슬포에 갈 기회가 생긴다면 거기서 배를 타고 가파도에 들어가보세요. 이 책에 실린 여러 소설들을 구상한 섬입니다. 책을 들고 가시면 더 좋구요. 그리고 「바얀자그에서 그가 본 것」에 나오는 『인도방랑』은 여전히 제가 좋아하는 책입니다.
Q : 소설집으로 9년 만입니다. 각자 쉽지 않은 시간들을 보냈을 독자에게 인사 부탁드립니다.
A :
얼마 전에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봤습니다. 이 영화는 우주대명작이므로 모두가 봤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에는 가만히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제 문제들을 싹 다 해결해주는 우주도 있을 텐데, 우리는 어쩌다가 이런 우주에서 살게 됐는지. 여기에는 온통 악당들과 문제들뿐이네요. 지난 몇십 년 동안 누군가 이 문제들을 다 해결해주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이 우주 어디에도 그런 존재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젠 이게 제 인생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이런 우주니까 여기의 슈퍼히어로는 다정한 사람입니다. 다정한 사람만이 자신의 문제와 이웃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또 기꺼이 팔을 걷어붙일 수 있으니까요. 우리 우주를 멸망에서 구한 우주대명작이 전하는 메시지니까 우리 믿기로 하고, 서로 다정해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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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북스는 '다산책방', '놀' 등의 브랜드로 문학 라인업을 탄탄히 다져가고 있습니다.
문학을 애정 하는 독자분들이라면 문학매거진 《epiic 에픽》이 친숙하실 것 같아요. 《에픽》은 픽션과 논픽션을 아우르며 다양한 장르의 편견 없는 이야기를 담은 문학 매거진입니다. 한 계절에 한 권씩 출간되며 가장 먼저 계절을 맞이하는 계간지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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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북스는 '다산책방', '놀' 등의 브랜드로 문학 라인업을 탄탄히 다져가고 있습니다.
문학을 애정 하는 독자분들이라면 문학매거진 《epiic 에픽》이 친숙하실 것 같아요. 《에픽》은 픽션과 논픽션을 아우르며 다양한 장르의 편견 없는 이야기를 담은 문학 매거진입니다. 한 계절에 한 권씩 출간되며 가장 먼저 계절을 맞이하는 계간지이기도 하죠.
《에픽》의 각 호에 붙는 제호는 읽어보지 않았더라도, 흔히 아는 익숙한 문학 작품의 제목을 차용합니다. 1호 ‘이것은 소설이 아니다’, 2호 ‘멋진 신세계’, 3호 ‘자기 앞의 생’, 4호 ‘BELOVED’, 5호 ‘야간 비행’, 6호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7호 ‘보이지 않는 인간’, 8호 ‘백년의 고독’ 그리고 올 10월 출간된 9호의 제호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입니다. 개성 있는 한국 문학에 갈증을 느끼는 독자들이라면 사랑할 수밖에 없을 이야기들을 《에픽》에서 만나보세요.
다산책방 '오늘의 젊은 문학' 시리즈를 통해 한국 문학의 미래가 될 원석 같은 작가들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나푸름, 서장원, 차현지, 이경희, 문지혁, 김나영 작가의 소설이 출간되었고, 곧 일곱 번 째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을텐데요. 2018년 중앙신인문학상 수상한 정선임 작가의 애틋하고 따뜻한 연대의 시선을 담아낸 <고양이는 사라지지 않는다>(가제)는 온기가 필요한 11월에 아주 잘 어울리는 단편집입니다. 이토록 쉽지 않은 날들이 계속됨에도 불구하고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상념에 잠기게 만드는 쓸쓸하지만 따뜻한 여덟 편의 단편을 실었습니다.
11월과 12월. '연말'이라는 단어로 한데 묶이는 2개월. 한해를 마무리하는 동시에 새로운 해를 준비한다는 이유로 저마다 정신없이 바쁠테지요. 다산북스도 올 한해 남은 라인업과 내년을 채울 라인업 준비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2023년에는 독자분들에게 더 의미 있고, 더 재미있는 이야기로 눈도장 찍힐 수 있도록 해보겠습니다.
― 배한진(다산북스 마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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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진의 소설 <단순한 진심>은 자신의 이름을 찾아 떠난 나나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35년 전 프랑스로 해외 입양되어, 파리에서 배우로, 극작가로 살고 있는 그가 기억하는 한국 이름은 문주였습니다. 문주는 이름의 기원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해 서영과 동행하고, 이태원 해방촌에서 복희 식당을 운영하는 주인 할머니와 인연을 맺습니다. 이들에게 이름은 각별합니다. 이름은 한 인간이 머무르는 집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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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진의 소설 <단순한 진심>은 자신의 이름을 찾아 떠난 나나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35년 전 프랑스로 해외 입양되어, 파리에서 배우로, 극작가로 살고 있는 그가 기억하는 한국 이름은 문주였습니다. 문주는 자신의 기원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해 서영과 동행하고, 이태원 해방촌에서 복희 식당을 운영하는 주인 할머니와 인연을 맺습니다. 이들에게 이름은 각별합니다. 이름은 한 인간이 머무르는 집이기 때문입니다.
"이태원의 유래는 두 가지네요. 하나는 이곳에 이태원이라는 역원(驛院)이 있었는데 그때의 이름이 지금까지 쭉 내려왔다는 거예요. 역원 이름이 이태(梨泰)인 이유는 여기에 큰 배밭이 있어서였고요. 다른 하나는 조선이 전쟁을 겪을 때마다. 겁탈당한 여자들이 이 동네에서 아이를 낳고 모여 살았는데, 사람들이 그들을 이타인(異他人)으로 불렀다네요. 그 이타인에서 이태원이 유래됐다는 거죠."
<단순한 진심> 중
조해진의 소설을 다시 펼쳐 읽었습니다. 이타인들이 살던 거리의 이름을 다시 봅니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서로에게 연루된다는 것. 비극적인 참사를 애통해하고 추모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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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지의 그림책 <어떤 책> 속, 덮인 책 속에는 아직 책을 떠나지 못한 한 아이가 남아 있습니다. 윤여준의 그림책 <작은 빛> 속, 지하철을 탄 사람에겐 오늘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긴 여운을 남기는 그림책을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