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14일 : 8호
“불쑥 떠오르는 얼굴에 전부를 걸어요”
고명재의 첫 시집을 받아듭니다. 노란 빛깔의 시집엔 이런 인상적인 대화가 등장합니다. "브라질 친구와 나란히 걷고 있는데 갑자기 친구가 길에서 펑펑 울었다 왜 그래 이거 봐 너무 환하다 개나리야 나도 알아 개나리라는 말 그런데 이거 우리나라 국기 색이야"(13쪽, 환) 줄글로 적어둔 이 대화의 풍경을 상상해봅니다. 노란 빛이 환한 슬픔으로 퍼지는 풍경, 이 슬픈 색깔이 내 마음에도 같은 빛깔로 퍼질 때 우리는 그 순간을 '시적'이라고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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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재의 첫 시집을 받아듭니다. 노란 빛깔의 시집엔 이런 인상적인 대화가 등장합니다. "브라질 친구와 나란히 걷고 있는데 갑자기 친구가 길에서 펑펑 울었다 왜 그래 이거 봐 너무 환하다 개나리야 나도 알아 개나리라는 말 그런데 이거 우리나라 국기 색이야"(13쪽, 환) 줄글로 적어둔 이 대화의 풍경을 상상해봅니다. 노란 빛이 환한 슬픔으로 퍼지는 풍경, 이 슬픈 색깔이 내 마음에도 같은 빛깔로 퍼질 때 우리는 그 순간을 '시적'이라고 기억합니다.
시를 읽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며 이 시집을 읽으면 좋겠습니다. 해설을 쓴 박연준 시인은 "시는 이런 거였어. 시는 피상이 아니고 관념이 아니야. 시는 삶 가운데 있어. 무엇도 겁내지 않고 언어를 옷처럼 밥처럼 사용하는 사람이 시인이지"(88쪽) 생각하며 시인의 첫 시집을 읽었다고 합니다. 첫눈의 차가움, 제철음식의 훈기. 고명재의 시는 이렇게 옵니다. 좋은 튀김 - 아침볕 - 여름옷으로 이어지는 고소하고 날렵하고 바삭하고 투명하고 가벼운, 그 감각처럼요. 첫 시집엔 '처음'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함이 있습니다. 이 시인의 애틋한 처음을 소개합니다.
좋은 튀김은 아침볕과 색이 같다고
늙은 조리사는 손등을 보여주었다
안이 다 비치지요?
여름옷처럼
얇은 튀김옷으로 우린 갈아입고서
(24쪽, 시와 입술)
- 알라딘 한국소설/시 MD 김효선
- 접기
23쪽: 첫눈은 기상청의 정의를 따르는 것 같지만 각각의 눈에서 시작되는 것 한 내시는 새벽에 홀로 궁을 걷다가 단풍 사이로 내리는 걸 분명히 봤다고 중요한 건 첫눈이 소식을 만든다는 것 눈 오네 팔월에 나는 너에게 썼다 사랑은 육상처럼 앞지르는 운동이 아닌데
Q :
첫 장편소설 <조선사이보그전>으로 제2회 문윤성SF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수상 당시 전자신문과 인터뷰를 하며 문장을 쓰지 않는, 문장보다 이야기에 집중하는 작가라고 자신을 소개한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소설가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이렇게 정의하게 되었을 과정이 궁금합니다.
A :
문장을 쓰지 않는다는 말에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인터뷰를 했을 때 했던 답의 의미는 저는 작가로서 문장에는 자신이 없다는 의미였습니다. 이건 일종의 체념이 담긴 말이기도 한데요. 저는 김금희 작가나 올가 토카르추크 작가처럼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작가들을 좋아합니다. 그런 작가분들의 글을 읽을 때는 그 문장이 뿜어내는 향기라고 할까. 분위기에 압도되고, 머리카락까지 쭈뼛 서는 느낌까지 듭니다. 문제는 제가 그분들처럼 쓰고 싶어도 쓰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지요…. 저는 작가로서 자신을 현실주의자로 여깁니다. 그렇기에 이루지 못하는 꿈은 접어두고 제가 가진 무기들을 극대화 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를테면 캐릭터 조형 같은 것들? 김초엽 작가가 심사평에서 그 부분을 짚어주셔서 민망하고 뿌듯한 마음이 교차했습니다.
한때 연극에 빠진 적이 있어서 그 시절에 보고 배운 것들이 제 글쓰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것 같습니다. 글을 쓸 때 어떻게 써야지 하고 정하지는 않지만, 쓰고 나서 읽어보면 희곡을 썼을 때의 감각이 소설 군데군데 녹아있음을 조금씩은 느낄 수 있어요. 그런 순간이 있었기에 스스로를 그렇게 정의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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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첫 장편소설 <조선사이보그전>으로 제2회 문윤성SF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수상 당시 전자신문과 인터뷰를 하며 문장을 쓰지 않는, 문장보다 이야기에 집중하는 작가라고 자신을 소개한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소설가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이렇게 정의하게 되었을 과정이 궁금합니다.
A :
문장을 쓰지 않는다는 말에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인터뷰를 했을 때 했던 답의 의미는 저는 작가로서 문장에는 자신이 없다는 의미였습니다. 이건 일종의 체념이 담긴 말이기도 한데요. 저는 김금희 작가나 올가 토카르추크 작가처럼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작가들을 좋아합니다. 그런 작가분들의 글을 읽을 때는 그 문장이 뿜어내는 향기라고 할까. 분위기에 압도되고, 머리카락까지 쭈뼛 서는 느낌까지 듭니다. 문제는 제가 그분들처럼 쓰고 싶어도 쓰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지요…. 저는 작가로서 자신을 현실주의자로 여깁니다. 그렇기에 이루지 못하는 꿈은 접어두고 제가 가진 무기들을 극대화 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를테면 캐릭터 조형 같은 것들? 김초엽 작가가 심사평에서 그 부분을 짚어주셔서 민망하고 뿌듯한 마음이 교차했습니다.
한때 연극에 빠진 적이 있어서 그 시절에 보고 배운 것들이 제 글쓰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것 같습니다. 글을 쓸 때 어떻게 써야지 하고 정하지는 않지만, 쓰고 나서 읽어보면 희곡을 썼을 때의 감각이 소설 군데군데 녹아있음을 조금씩은 느낄 수 있어요. 그런 순간이 있었기에 스스로를 그렇게 정의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Q :
한국과학문학상과 문윤성SF문학상을 함께 수상하셨는데요, 공모전 등을 목표로 글쓰기에 도전하고 있을 동료 작가들에게 응원의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A :
글쓰기는 장기전이며 직업으로서의 작가가 되는 것은 더욱 그렇습니다. 공모전이라는 제도는 장단점이 있다고 평가받지만, 작가가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확실한 목표가 되어준다는 점에서 굉장히 큰 장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공모전에 도전하시는 분들에게 글쓰기에 모든 것을 던지지 말라고 말하고 싶어요. 글쓰기는 체력을 요 하는 일이고 글쓰기에 모든 정신을 쏟는다면 일상의 다른 부분이 훼손당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하나, 둘 쌓이기 시작한다면 어느 순간 글쓰기라는 행위가 무거운 짐이 될 거로 생각해요. 가장 좋은 것은 글쓰기를 일종의 좋은 친구라고 생각하시는 것입니다. 언제 봐도 즐겁고 좋지만, 같이 살지는 않고, 오래 보지 않으면 다시 생각나는 그런 친구요. 저는 언제나 글쓰기를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도 여러분과 같은 길을 걷고 있고, 제가 어떤 성과를 거두었다고 해서 앞서 나간 것은 아니에요. 저에게도 글쓰기는 여전히 어려운 친구이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 다 함께 노력하고 좋은 결과를 얻기를 바랍니다.
Q :
<조선사이보그전>을 즐겁게 읽을 독자에게 함께 권하고 싶은 '컨텐츠'가 있다면 (소설, 영상물 등)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황정은 작가의 <연년세세>네요. 그 책은 제 소설이 일종의 가족소설이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코니 윌리스의 시간 여행자 시리즈. <조선사이보그전>을 다 쓴 다음에 접했지만 읽고 나서 저와 같은 주제를 썼다는 걸 알고 놀란 옥타비아 버틀러의 <킨>. 마지막으로 한국 SF의 숨은 명작인 <철선전>입니다. 로봇이 과거로 가는 내용이고 <조선 사이보그전>을 쓰는 데 영향을 많이 준 소설입니다. 지금은 네이버 캐스트를 통해서 보실 수 있습니다.
- 접기
첫 눈 내리는 계절이면 이 시집을 꺼내 읽게 됩니다. 어디서부터 첫눈이 시작되는지를 묻는 고명재 시인의 시에 이어 붙여봅니다. "누구는 첫눈이라 하고 누구는 첫눈 아니라며 다시 더듬어보는 허공, 당신은 첫눈입니까"
"눈을 보는 기분으로 살아간다면, 눈을 만질 때의 마음으로 사랑한다면, 눈이 사라질 때의 고요함으로 죽을 수 있다면." 아포리즘 <시의 인기척>에서 이어진 질문으로 흰 것에 대해 묻는 시집입니다. 우유니 사막, 첫눈, 흰빛, 흰 안개. 그 흰 빛과 함께 겨울의 한가운데로 들어섭니다.
눈이 내린 것처럼 하얗게 머리카락 색이 변하는 미소(이솜 역)의 흰 얼굴의 이미지도 이규리의 시와 잘 어울립니다. 전고운 감독의 2017년작 <소공녀>의 영상과 자이언티와 이문세가 부른 <눈>의 영샹을 함께 전해봅니다. 날씨가 춥습니다. 건강하게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첫 책을 내는 마음을 '우리'가 만납니다.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장희원의 첫 소설집 <우리의 환대>와 루나파크로 알려진 만화가, 카피라이터, 시인 홍인혜의 첫 시집 <우리의 노래는 이미>가 출간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