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8일 : 31호
따뜻한 거 먹이고 싶다
술을 빚고 마시는 여성들의 역사를 훑은 <걸리 드링크>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술 마시는 여자가 불법이었던 시대부터 출발해 '키친 드링커' (주방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 여성을 이르는 말)가 사는 현대의 주방으로 다다르는 책이었습니다. 임유영의 첫 시집 <오믈렛>에도 '키친 드링커'가 이런 방식으로 등장합니다.
여자. 여자의 손. 여자들의 손. 묶인. 찔린. 찢긴. 손. 희고 검고 누런 세계의 손. 여자가 가진 손. 레이디 핑거스 쿠키의 이름. 알코올중독자 중에도 여자가 많은데 누군가 그들에게 각별히 키친 드링커라는 애칭을 붙여주었다. (<오믈렛> 부분, 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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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빚고 마시는 여성들의 역사를 훑은 <걸리 드링크>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술 마시는 여자가 불법이었던 시대부터 출발해 '키친 드링커' (주방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 여성을 이르는 말)가 사는 현대의 주방으로 다다르는 책이었습니다. 임유영의 첫 시집 <오믈렛>에도 '키친 드링커'가 이런 방식으로 등장합니다.
여자. 여자의 손. 여자들의 손. 묶인. 찔린. 찢긴. 손. 희고 검고 누런 세계의 손. 여자가 가진 손. 레이디 핑거스 쿠키의 이름. 알코올중독자 중에도 여자가 많은데 누군가 그들에게 각별히 키친 드링커라는 애칭을 붙여주었다. (<오믈렛> 부분, 70쪽)
어두운 가게에서 작은 탁자에 모여앉아 자기 할 말을 반복하는 사람들의 풍경이 떠오르는 시집입니다. 호로록, 리듬감과 함께 좋은 사람과 좋은 음식을 먹고 싶어지는 시집이기도 합니다.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계속 보이지 않게 두어도 될까. 따뜻한 거 먹이고 싶다."(<만사형통> 부분, 55쪽)고 말하는 이와 둘러앉아 보이지 않는 우리에게 이 해가 어떤 한 해였는지 털어놓고 싶은 시잡이기도 합니다. 속이 추운 계절엔 이 계절 나름의 정취가 있지요. 내장을 데우는 독주를 빠르게 밀어넣고 한 입 베어문 포슬한 오믈렛의 온기 같은, 꼭 그런 시집입니다. 밥 잘 드시고, 따뜻하게 챙겨 입으시길 기원하며 안부를 전합니다.
- 알라딘 한국소설/시/희곡 MD 김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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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81쪽 : 이제 허겁지겁 우리끼리의 농담 같은 음악들로 각자를 도로 채워놓고, 제정신으로 돌아가기 위한 마지막 술을 들이켜지. 난 그때마다 뭔가 잊은 듯한 느낌이 드는 거야. 무언가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고...... 무언가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고.
Q :
긴 팬데믹 시기를 보내며 미니 픽션을 모은 『아라의 소설』, 아시아 작가들과 함께한 소설집 『절연』, “몇백 권쯤 읽은 미스터리 소설에 한 권을 더한다”는 작가 후기와 함께 ‘설자은 시리즈’가 출간되었습니다. 소설가로서 이 기간을 어떻게 보내셨는지 궁금합니다.
A :
이야기와 현실의 관계에 대해 여러모로 곱씹는 몇 년이었어요. 이야기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분명히 나뉘니까요. 큰 위기들이 다가와도 눈에 보이는 형태로 도움이 될 수는 없겠지만, 무력감에 빠지기보다는 사람들의 내면에 닿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겠다 마음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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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긴 팬데믹 시기를 보내며 미니 픽션을 모은 『아라의 소설』, 아시아 작가들과 함께한 소설집 『절연』, “몇백 권쯤 읽은 미스터리 소설에 한 권을 더한다”는 작가 후기와 함께 ‘설자은 시리즈’가 출간되었습니다. 소설가로서 이 기간을 어떻게 보내셨는지 궁금합니다.
A :
이야기와 현실의 관계에 대해 여러모로 곱씹는 몇 년이었어요. 이야기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분명히 나뉘니까요. 큰 위기들이 다가와도 눈에 보이는 형태로 도움이 될 수는 없겠지만, 무력감에 빠지기보다는 사람들의 내면에 닿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겠다 마음먹었습니다.
Q :
당나라에서 금성으로,
A :
정말로 주인공들의 움직임이 끌어가는 이야기인 것 같아요. 더 멀리, 더 크게 움직이게 하고 싶은 바람이 있습니다. 이제 막 2권을 쓰기 시작했는데 2권 『설자은, 불꽃을 쫓다』에서는 연쇄 방화 사건을 다룰 계획이고, 3권 『설자은, 호랑이 등에 올라타다』에서는 수도 천도 시도 중의 큰 정치적 사건에 휘말릴 예정입니다. 호랑이 등은 그런 큰 사건에 대한 비유로 고른 표현입니다.
Q :
지금은 경주인, 금성의 모습을 상상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설자은 독자가 방문하면 좋아할 듯한 장소를 추천해주실 수 있을까요.
A :
해가 질 무렵 월지에 가서, 밤이 완연할 때까지 천천히 둘러보시면 낮에 가실 때와는 다른 정취를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신문왕릉에서 선덕여왕릉까지 걸어볼 때도 좋았고, 진평왕릉 근처의 나무들이 무척 아름다워서 그곳도 추천드려요. 이 책을 경주에서 읽어주신다면 가장 근사하지 않을까 합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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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현 작가를 추천합니다! 고령화 시대에 『품위 있는 삶』을 읽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정소현 작가님 팬입니다! 건필하세요!
(익명 독자께서 보내주신 사연을 소개합니다.)
저는 무주택자입니다. 유주택자들과 미래에 대해 대화 할 때면 주택이 있고 없음을 기준으로 서로의 세계관이 얼마나 크게 벌어져있는지 종종 실감하곤 합니다. 최근 김포시 등 일부 경기도 지역을 서울시로 편입하는 안이 입에 오르내리며 또 부동산의 시간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디에 사는지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말해줍니다. <불과 나의 자서전>이 재개발을 다루고 <9번의 일>의 노동 문제를 다루던 방식으로 소설가 김혜진이 집에 관한 여덟 편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집을 출간했습니다. '어떤 시절에 내가 머물렀던 집들은 나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단련시키며 기꺼이 나의 일부가 되었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는 작가의 말과 함께, 저도 제가 머물던 산동네 집, 물 새는 집, 개미 나오는 집 등을 정확하게 바라보며 이 소설을 읽고 싶습니다.
올해 4월 첫 선을 보인 <SF 보다> 시리즈 두번째 책, 『SF 보다―Vol. 2 벽』이 출간되었습니다. <SF 보다>는 한국 SF문학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온 문학과지성사의 SF 테마 앤솔러지 시리즈로, 놀랍고 새로운 “S-F의 세계”를 활짝 펼쳐나가고 있습니다. 다채로운 ‘S(Story)’와 ‘F(Frame)’ 사이를 느슨하게 열어놓고 싶다는 마음을 담아 둘 사이에 하이픈을 넣어보았어요. 앞으로도 쭉 계속될 <SF 보다>의 여정에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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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4월 첫 선을 보인 <SF 보다> 시리즈 두번째 책, 『SF 보다―Vol. 2 벽』이 출간되었습니다. <SF 보다>는 한국 SF문학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온 문학과지성사의 SF 테마 앤솔러지 시리즈로, 놀랍고 새로운 “S-F의 세계”를 활짝 펼쳐나가고 있습니다. 다채로운 ‘S(Story)’와 ‘F(Frame)’ 사이를 느슨하게 열어놓고 싶다는 마음을 담아 둘 사이에 하이픈을 넣어보았어요. 앞으로도 쭉 계속될 <SF 보다>의 여정에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SF 보다―Vol. 2 벽』이 출간되었습니다. <SF 보다>의 중심 제재인 ‘벽’은 무언가 공간적이고도 입체적인 이야기를 이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제안했던 테마인데요. 듀나, 아밀, 이산화, 이서영, 이유리, 정보라 총 여섯 작가와 벽이 만나 근사한 여섯 가지 세계가 탄생했습니다. 오랜 옛날의 바위 벽부터 인공적으로 세워진 장벽, 격리와 구분을 위한 가상의 벽, 시공간과 차원의 벽 그리고 마음의 벽까지, 실로 다양한 형태의 벽들이 그 위에 세워졌어요. 책의 시작과 끝에 붙은 두 기획위원(문지혁, 심완선)의 하이퍼-링크와 크리티크는 벽이라는 제재가 문학의 영역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왔는지 톺음으로써 이 여섯 세계의 지도를 그립니다.
빛나는 상상력으로 쌓아 올린 벽(壁)들이 <SF 보다>를 향한 독자 여러분의 서벽(書癖)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해봅니다. 미리 반갑고 고맙습니다!
- _문학과지성사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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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산문집 <또 못 버린 물건들>로 물건에 대한 애착을 '이런 순정을 잊기는 어려운 일이다'라는 문장에 담아 고백한 은희경의 소설 두 권이 새로 출간되었습니다. 첫 소설집 <타인에게 말 걸기>와 낭만 없는 연애소설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입니다. 30년 가까운 시간 동안 계속 읽힌 작품이라는 것은 이 작품의 질문이 현재적이라는 의미이기도 할 것입니다. '사랑에서 환상을 깨는 것이 배신의 역할이다. 환상이 하나하나 깨지는 것이 바로 사랑이 완결되어가는 과정이라면, 사랑은 배신에 의해 완성되는 셈이다.' 같은 기가 막힌 문장을 읽으며, 꼭 내 맘 같은 은희경을 눈을 닦고 다시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