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3일 : 35호
아름다움을 만드는 것, 그게 우리의 능력이야.
지난 편지에 이 책을 출간한 출판사 민음사에서 '자그마치 680쪽. 요즘 이렇게 긴 소설을 쓰다니, 누군가는 혀를 내두르고 고개를 저을지도 모르겠습니다.'라고 소개해주신 <광인>을 읽고 있습니다. 드라마로 방영되기도 한 <사랑의 이해>의 이혁진 작가의 소설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이, 특히 각종 통계가 증명하듯 혼자 생존하기도 버거운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사랑이라는 게 무엇인지 숙고하던 작가답게 소설은 '광인'을 향해가는 등장인물의 여정을 끝까지 몰아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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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편지에 이 책을 출간한 출판사 민음사에서 '자그마치 680쪽. 요즘 이렇게 긴 소설을 쓰다니, 누군가는 혀를 내두르고 고개를 저을지도 모르겠습니다.'라고 소개해주신 <광인>을 읽고 있습니다. 드라마로 방영되기도 한 <사랑의 이해>의 이혁진 작가의 소설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이, 특히 각종 통계가 증명하듯 혼자 생존하기도 버거운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사랑이라는 게 무엇인지 숙고하던 작가답게 소설은 '광인'을 향해가는 등장인물의 여정을 끝까지 몰아붙입니다.
'광인'이라는 제목도, 묵직한 두께감도, 흰 바탕에 놓인 검은 위스키잔의 이미지도 어딘지 모르게 러시아 소설의 분위기를 풍깁니다. (톨스토이의 <광인의 수기>, 고골의 <광인일기> 같은 작품이 연상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추운 겨울에 마시는 도수 높은 술의 훈훈함과 짜릿함'(23쪽)을 논하며 인물들은 심연을 향해 깊은 속엣말을 내뱉습니다. 연애소설, 심리소설, 예술가 소설, 범죄소설, 어떤 방향으로든 읽을 수 있는 찐득한 소설을 기다려온 독자라면 이 소설에 주목해보시는 게 어떨까요.
- 알라딘 한국소설/시/희곡 MD 김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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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쪽 : 우리는 한 인생에서 오직 한 사람만 될 수 있어요. 인생은 하나고 우리의 시간도 하나니까요. 우리는 다 매여 있어요. 속박당해 있죠. 인생에, 시간에요. 그걸 벗어나려고 하면 방종이고 망상인 거고 거기에 갇히려고 하면 감상이고 자박인 거예요. 우리는 속박 안에서 생각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야 해요. 벗어나려 하지도 갇히려 하지도 않은 채로요. 그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속박이라는 뜻이죠. 어떤 속박을 선택하느냐가 우리의 자유예요.
Q :
책의 만듦새가 유독 소설과 잘 어울립니다. 빛나는 광물 같은 조각 이미지도 그렇고요, <그러나 누군가는 더 검은 밤을 원한다>라는 제목의(제발트의 <토성의 고리>에서 유래한) 라틴어 타이포도 멋집니다. 책을 처음 쥐었을 때의 느낌이 궁금합니다.
A :
책의 제목을 정했을 때, 그럼에도 편집자님과 한마음으로 표지가 너무 검지 않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어둡지만 밝고, 밝지만 어두운 막연한 이미지를 제 나름대로 상상했던 것 같은데 책의 물성이 딱 그러해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책을 열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특이하게도 면지가 아름다운 빛깔과 빛으로 가득해요. 나중에 전해 들은 것이지만, 디자이너님이 세심하게도 이러한 무늬를 여러 겹 겹쳐 만든 패턴으로 표지의 조각들을 만들어주셨더라고요. 책에 실린 다섯 편의 소설처럼 여러 겹의 우주이자, 세계를 이루는 조각이자, 우리를 비추는 거울처럼 보이길 바라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 책 자체가 첫 번째 리뷰처럼 느껴졌어요. 작가에게 가장 감사하고 행복한 표지라고 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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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책의 만듦새가 유독 소설과 잘 어울립니다. 빛나는 광물 같은 조각 이미지도 그렇고요, <그러나 누군가는 더 검은 밤을 원한다>라는 제목의(제발트의 <토성의 고리>에서 유래한) 라틴어 타이포도 멋집니다. 책을 처음 쥐었을 때의 느낌이 궁금합니다.
A :
책의 제목을 정했을 때, 그럼에도 편집자님과 한마음으로 표지가 너무 검지 않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어둡지만 밝고, 밝지만 어두운 막연한 이미지를 제 나름대로 상상했던 것 같은데 책의 물성이 딱 그러해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책을 열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특이하게도 면지가 아름다운 빛깔과 빛으로 가득해요. 나중에 전해 들은 것이지만, 디자이너님이 세심하게도 이러한 무늬를 여러 겹 겹쳐 만든 패턴으로 표지의 조각들을 만들어주셨더라고요. 책에 실린 다섯 편의 소설처럼 여러 겹의 우주이자, 세계를 이루는 조각이자, 우리를 비추는 거울처럼 보이길 바라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 책 자체가 첫 번째 리뷰처럼 느껴졌어요. 작가에게 가장 감사하고 행복한 표지라고 할 수 있겠네요.
Q :
수록작 <긴 예지>는 출간 예정작 5편의 프리퀄을 엮은 중·단편 SF 앤솔러지 <초월하는 세계의 사랑>으로 먼저 소개가 되었습니다. <긴 예지>의 다음 이야기를 궁금해하실 분도 계실 듯해요. 이 이야기 이후 이어질 우다영의 세계에 대한 프리퀄 안내 부탁드립니다.
A :
사실 중편 〈긴 예지〉는 이후에 나올 장편에 대한 한 조각을 미리 보여주는 기획을 제안받아 쓴 소설이고, 말하자면 프리퀄이라기보다 세계의 관념을 공유한 스핀 오프에 가까워요. 본편이 나오기도 전에 스핀 오프가 무척 구체화된 경우인데요…… 뒷이야기를 기대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이러다가는 두 번째 스핀 오프가 장편보다 먼저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웃음) 중편 〈긴 예지〉가 세계의 비밀 그 자체를 향해 파고들며 이때 벌어지는 사고의 확장을 중요하게 도모했다면, 장편은 그러한 세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따라가게 될 것 같아요. 등장인물도, 시공간도, 사건도 다르지만 저에게는 장편의 내용이 먼저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두가 아직 모르는 이 이야기를 어서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입니다. 더불어 이번 소설집 이후의 작품들은 세계를 향한 관심에서 인물을 향한 관심으로 이동해보려 한다는 작은 다짐이자 티저를 남겨봅니다.
Q :
SF를 쓰는 김보영 작가가 '지적이고 환상적이다'라는 평을 적어주셨습니다. 뒷면에 실린 작가의 말에서 인상적인 문장은 'SF의 터프함'이었는데요, 우다영 작가가 권하고 싶은 터프한 SF의 목록이 궁금합니다.
A :
권하고 싶은 SF는 너무나 많으나 제가 가장 좋아하는 방식의 충격을 준 작품들을 공유해보고 싶네요. 테드 창 〈이해〉, 그렉 이건 〈루미너스〉, 김보영 〈스크립터〉, 김필산 〈책이 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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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는 평온하게 잘 맞이하셨는지요? 12월 22일 연락드린 2023년의 편지 이후, 1월 3일 이 소식을 전하기까지 여러 번 눈이 내렸습니다. 저는 눈길에 펭귄처럼 뒤뚱뒤뚱 출퇴근을 반복하며 동네 사람들이 만들어둔 큰 눈사람, 작은 눈사람, 솔방울 눈사람, 눈오리를 구경했습니다. 올 크리스마스 전후엔 마침 희게 눈이 내려 소나무 위로 하얗게 쏟아진 눈더미가 영화 속 풍경 같기도 했습니다.
장수양 시인의 <손을 잡으면 눈이 녹아>도 눈이 오면 들춰보는 책 중 하나입니다. '손을 잡으면 눈이 녹아. / 극장에서는 그래.' <연말 상영>의 첫 두 줄만으로도 눈이 내리는 극장에 앉아있는 듯합니다. 장수양의 말을 빌려 새해인사를 덧붙입니다. 있는 그대로 충분한 한 해 보내시길 기원하겠습니다.
잊어 마땅한 일은 없어
마땅한 어울림 같은 것도
어떤 것도 처음이 될 수 있다면
나와 너의 세계가 지속되길 바라
<사랑의 뉘앙스>
한때 우리를 벅차게 했으나 이제는 읽을 수 없게 된 ‘옛날의 시집을 복간’하는 시리즈, 문학동네포에지. 90번까지 출간되었고, 2024년 봄 100번을 앞두고 있습니다. 판매를 계산하여 벌이는 돈의 판이라면 윷가락도 던지지 못할 터, 그럼에도 묵묵히 이 작업을 해오는 데는 “생이 덧없고 힘겨울 때 이따금 가슴으로 암송했던” 경험이라는 ‘역사’의 힘을 믿어서입니다. 시의 역사라는 것은 이렇듯 되돌아보며 전진한다는 말을 믿어서입니다.
특히나 이번 9차분에 모신 시인들의 이름, 유안진, 이시영, 강기원, 황학주, 김이듬, 엄원태, 박시하, 전동균, 김은주, 정해종. 그중 첫 시집이 8권이나 됩니다. 특히나 1970년 출간되었던 유안진 시인의 『달하』는 무려 53년 만에 복간되는 시집입니다. 이 시리즈를 위해 생존한 분들 가운데 여전히 활발한 시작 활동을 이어가고 계신 여성 시인들을 일일이 찾았고, 한 분 한 분 여쭸고, 어렵사리 모셨습니다. 1990년대 이전에 출간한 그들 시집 대부분이 절판이라는 절망을 배운 시간이기도 했고, 복간이라는 희망을 붙잡은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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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우리를 벅차게 했으나 이제는 읽을 수 없게 된 ‘옛날의 시집을 복간’하는 시리즈, 문학동네포에지. 90번까지 출간되었고, 2024년 봄 100번을 앞두고 있습니다. 판매를 계산하여 벌이는 돈의 판이라면 윷가락도 던지지 못할 터, 그럼에도 묵묵히 이 작업을 해오는 데는 “생이 덧없고 힘겨울 때 이따금 가슴으로 암송했던” 경험이라는 ‘역사’의 힘을 믿어서입니다. 시의 역사라는 것은 이렇듯 되돌아보며 전진한다는 말을 믿어서입니다.
특히나 이번 9차분에 모신 시인들의 이름, 유안진, 이시영, 강기원, 황학주, 김이듬, 엄원태, 박시하, 전동균, 김은주, 정해종. 그중 첫 시집이 8권이나 됩니다. 특히나 1970년 출간되었던 유안진 시인의 『달하』는 무려 53년 만에 복간되는 시집입니다. 이 시리즈를 위해 생존한 분들 가운데 여전히 활발한 시작 활동을 이어가고 계신 여성 시인들을 일일이 찾았고, 한 분 한 분 여쭸고, 어렵사리 모셨습니다. 1990년대 이전에 출간한 그들 시집 대부분이 절판이라는 절망을 배운 시간이기도 했고, 복간이라는 희망을 붙잡은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장장 4장이나 되는 유안진 시인의 말에서 이 부분을 오려봅니다. 문학동네포에지의 편집 방침뿐 아니라 존립 이유를 정확히 꿰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개정판 아닌 복간이라서 사투리 한 글자도 안 바꾸었고, 세로쓰기 초본을 가로쓰기로 편집하여 생기는 행간 서너 곳을 조정했을 뿐. 문학동네의 이 기획이 멀고 높고 큰 뜻의 한국문학사 자체가 되기를 소망하며, 정말 좋은 시 한번 써보고 싶다.”
- 김민정 시인(문학동네포에지 책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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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여름 <여름 외투>로 사랑받은 김은지 시인과 2020년 출간한 <나는 천천히 죽어갈 소녀가 필요하다>로 그 해 알라딘 독자가 투표한 한국문학의 얼굴들로 선정된 이소연 시인이 우정시집을 엮었습니다. '.시를 계기로 서로를 알게 되고, 함께 보고 느낀 시간들이' 목소리가 되어 들리는 듯한 책입니다.
우정이라는 이름을 더해 시를 엮은 창작동인 뿔의 시집을 함께 권해봅니다. 최지인, 양안다, 최백규 세 젊은 지인이 사랑, 꿈, 노동, 죽음 등을 한 목소리로 엮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