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28일 : 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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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지금

“처음에 그는, 그저 이니셜 L에 지나지 않았다”

이민진의 소설 <파친코>의 흥행 이후 '디아스포라'(이산 離散)라는 단어는 조금 덜 낯설게 받아들이지는 것 같습니다. 벨기에 브뤼셀의 탈북인 로기완과 그 로기완을 만나기 위해 벨기에로 간 방송작가의 이야기, 조해진의 장편소설 <로기완을 만났다>도 디아스포라 문학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소설을 읽으며 우리는 주인공의 입장에 이입하고 공감합니다. 별안간 다른 땅에 심긴 화분 속 묘목 같은, '디아스포라'의 경험을 하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우리는 로기완이 되어 로기완의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니셜 L로 기록된 시사잡지의 기사 한 줄을 보고 방송작가인 '나'는 사연 속 이니셜이 아닌 체온이 있는 한 인간의 궤적을 만나기 위해 그가 머물던 호스텔에 가서 그가 경험한 멸시를 정확히 경험해봅니다. 아무도 나를 인간으로 환대하지 않는 곳에서 투명 인간이 된 기억이 제게도 있습니다. 로기완이 되는 조해진의 소설을 읽으며 이 소설이 말하는 '진심'이라는 단어의 진정성에 눈이 뜨거워졌습니다... + 더 보기

151쪽 : 그러나 내가 지금 알 수 있는 것은 없다. 타인의 고통이란 실체를 모르기에 짐작만 할 수 있는, 늘 결핍된 대상이다. 누군가 나를 가장 필요로 할 때 나는 무력했고 아무것도 몰랐으며 항상 너무 늦게 현장에 도착했다. 그들의 고통이 어디에서 시작되고 어느 지점에서 고조되어 어디로 흘러가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삶 속으로 유입되어 그들의 깨어 있는 시간을 아프게 점령하는 것인지, 나는 영원히 정확히 알아내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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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지금 _3문 3답

Q : 미니픽션 <기억을 먹는 아이>는 2021년 나온 에세이 이후 오랜만에 출간된 도대체 작가의 책입니다. 그간 어떻게 지내셨을지 근황이 궁금합니다.

A : 실은 마지막으로 책을 낸 게 2021년인지 얼마 전에야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지 몰랐어요. 제 특기(?)가 딱히 뭘 하지 않아도 세월을 하염없이 빠르게 보내는 것인데, 그간에도 그저 시간을 잘 흘려보내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간 있던 중요한 일들을 꼽아보자면 오래 함께 지낸 저의 개 '태수'를 떠나보낸 일, 각각 제법 오랜 시간 이어온 <경향신문 토요툰><태수는 큰형님> 연재를 끝낸 일, 제가 자꾸 내어놓는 맥주 캔을 보고 동네 아저씨들이 '(캔을 내어놓는 게 누구인지 몰라도)보통 술꾼이 아니야!'라고 수군거리는 것에 충격 받아 1년 간 술을 아예 끊어본 일, 벼르던 삭발을 해본 일, 게스트하우스 청소 알바를 한 일, 유화와 젬베를 배운 일, 그리고 남자 때문에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봉산탈춤을 추며 수치스러워한 일 등이 떠오릅니다. 잘 살았네요. 지금은 고양이 '꼬맹이', '장군이'와 함께 지내고, 회사를 다니고 있어요. 지금도 출근 전에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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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MD는 지금 스마일

김고은 주연 영화 <파묘>가 개봉 7일 만에 300만 관객을 돌파했다고 합니다. 소설 독자의 화제작 <듄>도 개봉하며 극장 가기 좋은 계절이 드디어 다가오고 있습니다... 황정은 작가의 팬이라면 <파묘>라는 제목이 낯설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2020년 출간된 황정은의 연작소설 <파묘>는 노인이 된 여성 이순일이 차녀 한세진과 함께 철원군의 외조부의 묘를 없애는 첫 소설 <파묘>로 이 가족의 이야기를 엽니다.

부동산을 점유하고 무덤의 봉분을 세우는 전통적인 방식의 장례를 요즘은 잘 하지 않지요. 가볍고 깔끔한 납골당에 비해 무덤은 너무 거창하고 손이 많이 가고 비경제적입니다. 땅이 얼기 전에 이 무덤을 파해야 한다고 이순일은 그날의 파묘를 서두릅니다. 파하고 해체하고 없애고 싶은 기억들이 가족에겐 특히 많을 것입니다. 이 묻어둔 것들, 오래 해소되지 못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황정은의 소설을 함께 읽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연년세세>는 2020년 소설가 50인이 뽑은 올해의 소설 1위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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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는 지금 : 타이피스트

“세상의 작지만 소중한 목소리를 기록하겠다”는 모토로 시작한 출판사 타이피스트는 문학을 베이스로 하지만, 독특하고 개성 있는 목소리만 있다면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세상의 소중한 책을 만들고자 합니다. 타이피스트는 새해의 시작과 함께 <타이피스트 시인선> 시리즈를 시작하며, 001번 권혁웅 시인의 『세계문학전집』, 002번 박은정 시인의 『아사코의 거짓말』을 동시 출간하였습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시인선에서는 한국 문학의 현재성을 가장 잘 담을 수 있으며, 작품성과 실험성을 두루 갖춘 시집들을 출간할 계획입니다.

<타이피스트 시인선> 001번 『세계문학전집』은 매 시집마다 새로운 이야기꾼으로서 삶에 대한 깊은 성찰과 완숙한 개성으로 시의 영역을 넓혀 온 권혁웅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입니다. 일상의 숨겨진 사유를 제시하는 이 시집은 우리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들 속에서 철학적 사유를 제시하고자 하는 시인의 시를 만날 수 있습니다. 시편마다 시원하게 쏟아지는 유머 속에서 현대 사회를 바라보는 시인의 진중하고 깊은 비애와 사유의 시선을 만날 수 있습니다. 지금껏 시가 어려웠던 분들에게도 이 시집은 술술 읽힐 수 있으며, 삶의 현장을 조망하는 문장 속에서 냉철하게 그려지는 위트와 현실 풍자를 통해 지금껏 우리가 보지 못했던 현실 속 우리를 발견하고 보듬게 만들 것입니다. +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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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하고 싶은 날 있잖아요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에서 황정민이 맡은 전요한 목사는 자신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수하에게 '너 사탄 들렸어?'라고 호통을 칩니다. 이 대사는 밈이 되어 시상식 등에서 다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직장 상사 악령 퇴치부>의 디자이너 김하용이 근무하는 회사에도 악령이 들린 것 같은 상사가 있습니다. 일을 떠맡기고, 책임은 회피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던 상사가 갑자기 착해졌는데, 악귀 씌인게 아니고서야 착해질리가 없는 인간이라 김하용은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을 씁니다. 이렇게 상사 이슈로 알게된 유튜버 '무당언니', 무속인 명일과 협업해 부적을 디자인하며 김하용은 악령 퇴치에 나섭니다.

차라리 퇴마라도 되었으면 싶은 인간들을 떠올리며 읽기 좋은 경쾌한 오컬트 소설을 두 권 소개합니다. 김하용의 퇴마 사무실 <직장 상사 악령 퇴치부>와 귀신 하나를 고쳐주면 손님 열 명을 데려다주겠다는 거래에 응한 한의사 승범이 일하는 병원을 배경으로 한 코미디 오컬트 판타지 힐링 소설 <수상한 한의원> 을 함께 놓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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