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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보다 단단한 토마토 한 알
고선경 지음 |
질리지 않는 건 없어
세탁기 안에 커다란 쿠로미 인형을 넣고 돌린다
쿠로미는 비눗물 속에서 패대기쳐져도 처참해지지 않네
어제는 친구들에게 나눠 줄 책갈피를 만들었지
구슬을 주렁주렁 매달수록 무거워지는
기쁨
바닷가의 모닥불을 상상해 봐
빛나는 것은 넘치지 않아
그런데 왜 추운 곳에서 더위를 생각하거나
따뜻한 곳에서 추위를 생각하는 건 쉬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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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드 리딩
강혜빈 지음 |
멀리서 미러볼이 빛나기에
춤을 췄습니다
미래를 다 보고도 모른 척했어요
목 조르다 말고 핥았습니다
수요일이 되면 늘 궁금했죠
언제까지 건강해야 하나요
고층에서 내려다봐도 되나요
큰 인물 되기 싫어요
아무나 되겠습니다
이렇게 심심해도 되나요
지구에 무임승차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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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우주가 바라는 나의 건강한 삶
남현지 지음 |
선생님
제가 사랑이 없습니다
(…)
어제도 누가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지 하고 물었는데
보내주신 멸치볶음은 감사히 잘 받았다고
대답했습니다
인사말로는 부족합니까?
그럴 수 있습니다
친절보다 더 나은 약속이 있을 것 같습니다
혼자서는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밤이 계속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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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오려면 여름이 필요해
민구 지음 |
원장 선생님이 내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민구요. 그럼 성은? 민이요. 선생님은 또래 아이들이 있는 강의실로 나를 데려갔다. 그러고는 말했다. 자, 모두 주목. 오늘 우리 학원에 새로 들어온 민민구 학생을 소개할게.
나는 수업료 봉투에 적힌 이름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재현학원 5학년 민민구. 세상에 없는 이름. 그것은 인명사전에서 찾을 수 없었다. 이민구, 신민구, 한민구는 존재하지만 민민구는 이 나라 사람의 이름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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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고 선량하게 잦아드네
유수연 지음 |
우리는 우리를 방류하기로 한 것이지요 그래서 내가 거기에 홀로 있고 당신은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나도 다음 열차로 올라갔습니다 좌석은 매진되어 전철을 타고 갔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껴서 답답하게 올라가니 슬픔보다 더위가 나를 지배했습니다 사람은 가까이 있는 것에 먼저 반응합니다 땀흘려 이룬 모든 일이 허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중에 사랑이 먼저 흘러가버렸네요 흐름의 시작을 찾을 수 없는 유수와 같은 시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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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없는 토요일
윤지양 지음 |
제가 어떤 이야기를 해도 선생님은 믿지 못할 거예요
너무하네
내가 이해심 없는 사람으로 보이니
아뇨 선생님은 사려 깊은 사람이에요
하지만
집의 이야기를 안다고 해서
그 집 벽에 기대어 벽지를 핥는 것은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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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선 숲길을 걷고 있어
김이강 지음 |
묘사가 금지된 장소에 대해
나는 말하기 시작한다
바케크라고 한대요, 그 사람이 세우는 게시판을, 이탈리아어인지,
어떤 벽 같은 거래요
그러니까 지도 같은 것일지도 모르고
안내판 같은 건가요?
기사가 처음으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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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코의 거짓말
박은정 지음 |
-이건 먹을 수 있는 거야?
-나도 처음 보는 열매인데……
-그럼 내가 먹어 보고 말해 줄게
-목숨을 걸고 싶을 만큼 먹고 싶은 건가?
-우연에 목숨을 맡기는 거지. 독이 든 열매면 다행이고, 독이 든 열매가 아니라면 목숨이 하나 더 생기는 거야.
누가 이런 꿈을 시작했는지 알 수 없다
수학 공식처럼 딱 떨어지지만
매번 틀리고 마는 문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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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한강 지음 |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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