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게 사는 게 싫었던 나는 2022년 5월 22일,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피해자가 되었다. 삶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이제는 간절히 평범하게 살고 싶다. 범죄피해자가 되고서야 깨달았다. 대한민국은 범죄피해자가 보호받는 세상이 아니었다. 부실 수사, 피해자 지원 부족, 보복 협박…… 이건 아니다 싶었다. 법을 공부하고, 언론에 발품을 팔고, 국민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수사기관이 중상해로 처리하려던 사건을 성범죄 살인미수 사건으로 바꿔냈다. 가해자는 이런 나를 저주했다. 감옥을 나가면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사건 직후 오른쪽 다리가 마비됐지만 기적처럼 마비가 풀렸다. 범죄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라는 기적으로 받아들였다. 국회와 언론에 가서 목소리를 냈다. 숨지 않겠다. 사회와 맞서 기꺼이 싸우겠다. 이 책은 그 선언이다.
2011년부터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현재 한국여성변호사회 아동청소년특별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수사심의위원, 해바라기센터 운영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젠더 폭력과 범죄피해자 사건을 주로 다루며, 피해자 보호와 권리 보장을 위한 법률 지원에 힘써왔다. "피해자도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원칙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피해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주저 없이 낼 수 있도록 제도와 법률이 변화해가는 데 앞장서고 있다.
2022년 5월 22일 새벽 5시경, 김진주는 귀갓길에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중 일면식도 없는 남성에게 돌려차기로 가격당하고 수차례 짓밟힌 채 방치된다. 건물 입주민이 피범벅으로 쓰러져 있던 그를 발견한 덕에 김진주는 간신히 병원으로 이송돼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김진주는 전신이 마비됐고, 필름이 잘린 것처럼 사건 당시 기억을 잃었다.
친한 사람들과 즐겁게 시간을 보낸 평범한 날이었을 뿐이다. 그 누구도 내게 닥치리라 예기치 못한 사건이 벼락처럼 그의 삶 한가운데에 내리꽂혔다. 김진주는 기적적으로 마비가 풀렸고 다시 걸을 수 있었다. 그는 그날 직감한다. 인생이 송두리째 달라질 것이며, “더 이상 평범하게 살 수 없다”는 것을. 이게 기적이라면, 그는 새롭게 시작된 삶을 자신과 같은 범죄피해자들을 돕는 데 쓰기로 결심한다.
이 책은 김진주가 가해자와 가해자 중심주의적 사회, 법, 제도에 맞서 싸운 500일간의 투쟁기다. 소위 ‘묻지 마 범죄’로 분류되었던 사건은 김진주의 투쟁을 통해 ‘부산 돌려차기 강간 살인미수 사건’이라 명명되었고, ‘이상동기 범죄’ 혹은 ‘무차별 범죄’로 다시 쓰였다. 이 책은 범죄피해자라면 알아야 하는, 그러나 여태 범죄피해자 입장에서 생생하게 증언된 바 없던 일들을 쏟아낸다.
우리는 설마 나한테 그런 일이 생기겠냐며 태연스레 범죄 시사 프로그램을 시청하겠지만, 김진주는 단호히 말한다. “범죄피해를 당하지 않는 방법 따윈 없다. 우리는 피해자이거나 예비 피해자일 뿐이다.” 다만 범죄피해에 대처하는 방법은 있다. 피해자로서 살아남기 위해 그가 몸소 겪은 결정적인 이야기들이 피해자 중심주의적 관점으로 갈급히 전해진다. 범죄피해 생존자가 다음 생존자에게 전하는 긴급 생존 안내가 이 책을 빼곡히 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