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에는 무언가 나에게 매우 중요한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고, 처음부터 그렇게 느껴왔다.” - 무라카미 하루키
어느 여름 석양빛 아래 선명히 남은 기억이 소년에게 있다. "진짜 내가 사는 곳은 높은 벽에 둘러싸인 도시 안이야." 소녀는 말했다. 소년과 함께 이곳에 있는 자신은 실제 자신이 아니며 대역이나 그림자와 같은 거라고. 소녀가 사는 도시에는 시계에 시곗바늘이 달려 있지 않으며, 진짜 자신은 그곳에서 밤의 도서관에 머문다고 했다. 그 도시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소년에게 소중한 것들을 버려야 할 수도 있고 아주 많은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러나 어떻게든 도시에 도착한다면 소년을 위한 자리가 딱 한자리 마련되어 있을 거라고 했다. 매일 밤 도서관에 보관된 무수히 많은 오래된 꿈을 읽는 사람. '꿈 읽는 이'로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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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름 석양빛 아래 선명히 남은 기억이 소년에게 있다. "진짜 내가 사는 곳은 높은 벽에 둘러싸인 도시 안이야." 소녀는 말했다. 소년과 함께 이곳에 있는 자신은 실제 자신이 아니며 대역이나 그림자와 같은 거라고. 소녀가 사는 도시에는 시계에 시곗바늘이 달려 있지 않으며, 진짜 자신은 그곳에서 밤의 도서관에 머문다고 했다. 그 도시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소년에게 소중한 것들을 버려야 할 수도 있고 아주 많은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러나 어떻게든 도시에 도착한다면 소년을 위한 자리가 딱 한자리 마련되어 있을 거라고 했다. 매일 밤 도서관에 보관된 무수히 많은 오래된 꿈을 읽는 사람. '꿈 읽는 이'로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돌연 소녀가 사라진 후, 소년은 몇 번이고 기억을 재생하며 그 도시에 갈 수 있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그곳에서 진짜 소녀를 만날 수 있기를. 그렇게 오랜 시간을 기다린 끝에 그는 결국 견고하고 높은 돌벽으로 둘러싸인 도시를 찾아낸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은 30대의 무라카미 하루키가 한 문예지에 중편소설로 발표한 후 43년이 흐른 끝에 3부 구성의 장편소설로 완성해낸 작품이다. 작가 후기에서 "이 작품에는 무언가 나에게 매우 중요한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고, 처음부터 그렇게 느껴왔다. 다만 당시의 나는 유감스럽게도 아직 그 무언가를 충분히 써낼 만큼의 필력을 갖추지 못했다"며 "나에게 이 작품은 줄곧 목에 걸린 생선 가시처럼 신경쓰이는 존재였으므로 이 작품을 완성한 지금 솔직히 마음이 무척 편안해졌다"고 직접 고백할 정도로 하루키의 작품세계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소설이다. - 접기
"어떻게 하면 그곳에 들어갈 수 있는데?"
"그냥 원하면 돼. 하지만 무언가를 진심으로 원한다는 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야. 시간이 걸릴지도 몰라. 그사이 많은 것을 버려야 할지도 몰라. 너에게 소중한 것을. 그래도 포기하지 마.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려도, 도시가 사라질 일은 없으니까."
- 15쪽
너에게 꿈이란 현실세계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과 거의 동급이었고, 간단히 잊히거나 지워지는 것이 아니었다. 꿈은 너에게 많은 것을 전달해주는, 귀중한 마음의 수원水源 같은 것이었다.
- 43쪽
시간은 몹시 느릿느릿하게, 그래도 결코 뒷걸음치지 않고 내 안을 통과해 갔다. 일 분에 정확히 일 분씩, 한 시간에 정확히 한 시간씩. 느리게 나아갈지언정 거꾸로 가는 법은 없다. 그것이 그때 내가 몸으로 깨달은 사실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때로는 그 당연한 것에 무엇보다도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
- 137쪽
나는 그 슬픔을 무척 잘 기억했다. 말로 설명할 길 없는, 또한 시간과 더불어 사라지지도 않는 종류의 깊은 슬픔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를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가만히 남기고 가는 슬픔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대체 어떻게 다뤄야 할까?
- 280쪽
“지금 여기서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오직 하나―믿는 마음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무언가를 강하고 깊게 믿을 수 있으면 나아갈 길은 절로 뚜렷해집니다. 그럼으로써 이다음에 올 격렬한 낙하를 막을 수 있을 겁니다. 혹은 그 충격을 크게 누그러뜨리거나요.”
- 452쪽
한 세계와 또다른 세계의 경계를 초월할 수 있는, 구체적인 고통을 수반하는 각인. 나는 아마도 그것을 내 존재의 일부로 간직한 채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 66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