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린드그렌 선생님』은 책과 문학이 어린이에게 정신적 가치를 일깨워 줄 수 있다는 믿음, 혼란과 슬픔 속에서 자기 길을 찾아 나설 수 있게 도와준다는 확신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 주는 작품이다. 문학이 어린이의 삶을 좀 더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들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소망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어쩌면 유은실은 자신의 첫 책에 이후 작품 세계의 청사진을 그려 놓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 해설 「유은실과 린드그렌, 어린이를 환대하는 두 세계」 중에서(아동청소년문학 평론가 김민령)
저의 첫 책인, 이 책의 첫 문장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선생님께”라는 헌사입니다. 책이 나온 날부터 그 첫 문장에 책임지며 살아야 한다는 무게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20년 동안 쓴 작품들은 어쩌면 그 영광스러운 무게를 감당하느라 끙끙댄 흔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어느덧 청년이 된, 비읍이처럼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책을 읽었던 나의 소중한 독자들. 여러분이 있어 제가 계속 작가로 살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유은실(아동청소년문학 작가)
알라딘 단독 리커버에서는 권사우 선생님의 따뜻한 그림을 온전히 보여 드리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본판의 메인 컬러인 보라색을 군데군데 넣어 신구 조화가 이루어졌으면 했고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영문을 제목자 뒤로 옅게 배치해 주인공 ‘비읍이’의 린드그렌 선생님을 향한 덕질을 표현해 보았습니다.
이주원 디자이너
그 책을 다 읽을 때까지 나는 앉은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삐삐 이야기는 이모 말대로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었다. 그리고 엄마가 천천히 부르던 삐삐 노래처럼 슬펐다.
그때 누가 와서 “이 책에서 어떤 점이 가장 좋았나요?” 하고 물었다면 나는 아무 말도 못 했을 것이다. 하지만 ‘책에 빠지는 것’이 뭔지 가슴과 머리로 깨달았다.
상상을 하고 돌아오면 현실이 더욱 초라하게 느껴졌다. 린드그렌 선생님 책을 읽으면서부터 나는 부쩍 상상을 많이 했다. 하지만 상상을 안 할 수는 없었다. 상상은 내 맘대로 안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상상은 저절로 하게 되었다. 상상을 해서 좋은 점도 있었다. 상상을 많이 하면서부터 ‘가슴이 꽉 막힌 것처럼 답답한 것’이 없어졌다. 덜 심심했고 덜 외로웠다. 무엇보다도 상상을 하는 동안 나는 행복했다.
“린드그렌 선생님 책은 사람에 대한 진정한 예의가 뭔지 가르쳐 주니까.”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람에 대한 진정한 예의가 뭐예요?”
“그건 말이지……. 가슴으로 린드그렌 선생님 책을 읽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되는 거야.”
저는 왜 어린이책에 그렇게 끔찍한 얘기를 쓰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어요. 그래서 언니한테 물었지요. “비읍아, 어떤 게 진짜 끔찍한 건지 알아야 돼. 그걸 모르고 어른이 되면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도 있지.” 참 멋진 말이죠? 이번엔 저도 이해가 갔어요. 『사자왕 형제의 모험』을 가슴으로 읽은 아이들은 커서 텡일 같은 악당이 될 수 없을 테니까요.
엄마는 완전히 아이가 되어 있었다. 노래방에서 겅중겅중 뛰며 삐삐 노래를 부르던 때처럼 말이다. 지혜는 제페토 할아버지랑 춤을 추는 피노키오 같았다. 나보다 먼저 가슴속 구슬을 깨 버렸다고 믿을 수 없었다. 천진한 꼬마의 모습이었다. 나도 함께 춤을 추고 싶었다. 얼음판 위에서 빙빙 동그라미를 그려 보고 싶었다. 하지만 린드그렌 선생님 말대로, 세상엔 멈춰 서서 그냥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때가 있는 법이다. 나는 바로 그때를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