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이탈리아 정부는 마태오 리치 서거 300주년을 기해, 동서양 문명의 가교가 된 ‘이탈리아의 위대한 아들’을 기억하기 위해 국가 주도로 이 책을 감수하여 발간하였다. 사업의 총책임은 예수회 소속 중국학자 델리야(Pasquale M. D’Elia S. I.) 신부가 맡았다.
델리야는 이후 30여 년간 원전에서 언급하고 있는 행로를 따라 중국 현지를 답사하고, 기록을 고증하는 한편, 그때까지 연구된 명말청초 동서양 문명교류사의 모든 기록을 각주에 담아 1942년(Volume I)과 1949년(Volume II)에 두 권의 책으로 출판하였다. 책은 다섯 책(冊)으로 구분한 리치의 원문 텍스트를 본문으로 하고, 델리야가 검증한 내용과 그때까지 연구된 학문적 자료들을 각주로 달아 방대하고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책은 엄밀히 말해 ‘리치 원전과 델리아의 주석서 합본’이라고 할 수 있지만, 델리야는 그냥 『리치 원전, 그리스도교의 중국 진출기』로 편찬하여 소개하였다. 역자가 번역서로 사용한 판본은 바로 이것이다.
책의 내용은 리치가 세분하여 번호(number)를 단 그대로, 모두 1000번까지 있다. 이것은 리치가 성경을 비롯한 전통적인 고전서의 양식을 그대로 따랐다는 것을 말해 준다.
한편, 『리치 원전』은 본문과 각주의 비교를 통해 리치의 원저에 페레이라와 트리고가 이미 손을 댔고, 거기에 델리야가 다른 방식으로 손을 댄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원저자인 리치, 분실된 몇 개의 장(章)을 포르투갈어로 가필한 페레이라, 그것을 그대로 집대성하여 라틴어로 번역하여 유럽으로 가지고 갔던 트리고, 그리고 20세기 초, 이 판본들을 총 정리하여 『리치 원전』으로 소개한 델리야를 통해 본서를 둘러싼 중국학의 변천사를 엿볼 수 있다.
각주가 많아 읽기에 불편한 점이 있겠으나 학문적인 관점에서는 오히려 이 점이 더 중요하게 평가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것은 핵심 저자인 리치와 델리야가 다른 사람의 경험이나 견해를 빌려서 쓴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기가 직접 경험하고 느끼고, 연구한 소견을 담은 자료이기 때문에 원문 텍스트에서 읽히는 행간의 의미까지 깊이 있게 통찰할 수가 있다.
이탈리아인 마태오 리치(Matteo Ricci), 중국인 리마두(利瑪竇)의 열정과 성실함을 보면서 한 중국인 학자가 『기인십편』(리치 저) 발문에서 한 말, 리치의 말과 삶이 기이하고, 그야말로 “역설을 사는 사람”이라는 말이 여운으로 남았다. 베네딕토 데 고이스의 묘비명 “카타이를 찾다가 하늘을 발견했다”라는 대목에서는 한국교회의 기원이 떠올랐다. 서학, 서양 학문을 찾다가 천학, 그리스도교를 만난 우리의 이야기 말이다.
저자인 리치와 델리야가 쓴 이탈리아어 특유의 만연체 문장을 최대한 우리말의 통사구조에 맞게 옮기려고 노력했다. 가독성을 생각해서 용어를 쉽게 풀어 쓰려고도 노력했다.
로마를 두고 “영원의 도시”, “유럽 문화의 기둥”이라고 한다. 이 책 『모든 길은 로마로』는 그 이유를 키케로와 베르길리우스가 말한 ‘일곱 언덕으로 이루어진’ 도시, 로마를 두 발로 직접 밟으며 유럽의 지성과 예술을 통해 재발견해 나가는 과정이다. 팔라티노, 카피톨리노, 아벤티노, 첼리오, 에스퀼리노, 비미날레, 퀴리날레를 중심으로 로마제국의 역사와 문화가 시작되었다. 제국 시대는 물론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법과 종교와 문학으로 서양사에 지울 수 없는 자취를 남긴 장대한 과정을 따라가 본다.
역사는 강물과 같아서 특정 시대에 멈추지 않고, 흘러서 우리 시대에까지 이른다. 제국의 역사는 물론 중세와 근대, 현대에 이르며 유럽의 많은 지성인과 예술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었고, 발전의 동력이 되었다. 테베레의 강물은 지금도 모든 유럽인의 가슴에 흐르고 있다.
이 책은 그 과정에서 알려진 것은 물론이거니와 잊힌 신화와 전설과 역사의 새로운 사실들을 찾아내어, 과거 로마의 영광과 현대 로마의 풍경에 담긴 문명과 대제국의 면모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신의 도시’가 아니라 ‘인간의 도시’로 영욕의 역사에 담긴 로마의 민낯을 보게 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인류에게 화두가 되고 있는 지금, 엑스 세대나 와이 세대 또는 고체 세대나 액체 세대라는 말은 마치 호모루돌펜시스, 호모에렉투스, 호모사피엔스 등등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다양한 인간 종이 살았던 먼 옛날에 그랬듯이, 오늘날의 인류 세대가 전혀 다른 인간 종처럼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밀레니얼 세대가 현재 트렌드를 주도하는 가운데, 기성세대 중 가장 젊은 엑스 세대마저 이들이 주도하는 세상의 변화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입장이 되었다. 변화를 받아들인 세대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을 들으며 밀레니얼이 주도하는 조직과 사회의 혁신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거침없는 도전, 개성과 독창성을 보며 ‘따라 하기’, ‘쏠림 현상’이 체화된 엑스 세대는 확연한 세대 간 격차를 실감할 것이다.
오늘날 드러나는 세대 차이는 어쩌면 당연한 현상일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 바우만은 이 현상을 ‘갈등’으로 파악하여 이를 문제시하는 것은 편협한 정치계와 언론계가 만들어 낸 프레임이라고 본다. 그는 세대 차이를 인정하고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라고 조언한다. 그런 점에서 바우만과 레온치니, 두 사람의 세대를 넘나드는 대화를 담은 이 책은 현대세계가 직면한 세대 간 대화와 협력의 중요성을 직접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바우만은 세 가지 주제를 언급하며 그것이 액체 세대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밀레니얼의 특징이기에 그것을 이해하라고 독려한다. 현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동행인의 실상이라는 것이다. 바우만은 그들을 부정하지 않고, 그들의 다양한 변화상, 곧 피부, 공격성, 사랑을 통찰하려 한다. 이전 세대와는 전혀 다르게 나타나는 현상에 찬반 논리를 내세우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에 대해 따뜻한 마음을 가지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 역시 액체 세대와 고체 세대 사이에 ‘낀’ 세대로서, 부모를 모시고 자식을 키우는 세대로서, 양쪽 세대 간 차이와 이해의 당위성에 고개가 끄덕여지곤 했다.
하지만 번역을 하는 과정에서 나도 모르는 액체세대의 특징이 많이 언급되어 어려움이 컸다. 특유의 간접화법으로 진행된 두 저자의 날카로운 통찰과 짧지만 깊은 대화 또한 그 맛을 살리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가독성을 위해 원문에서 멀어지면 앞서 국내에서 출간된 바우만의 저작들과 결이 맞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설픈 문장이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나의 능력이 부족한 탓이다. 다만 옮긴이로서 세대 간 차이를 깊은 눈으로 바라보고 급변하는 현대사회에 우려와 사랑을 남기고 떠난 바우만의 통찰과 메시지가 제대로 전해지기를 바랄 뿐이다.
끝으로 번역에 도움을 주신 김하종(P. Vincenzo Bordo) 신부님과 사회학 전공자로서 아낌없는 조언을 해주신 수원교구 최영균 신부님 그리고 귀한 시간을 내어 감수의 말씀을 해주신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김경일 교수님께 깊이 감사 드린다.
이탈리아 피렌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