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천안역에서 익산역까지 굽이굽이 이어지는 장항선 역과 그 지역에 얽힌 이야기를 길동무로 삼았습니다. 처음 시작을 ‘간이역’으로 하고 ‘장항선’으로 마무리하는 가운데에 33개 역을 취재하여 모두 35개의 이야깃거리로 구성하였습니다. 역과 지역 숨결이 깃든 시 35편과 그 연줄에 매달려 고개를 주억거리는 시 35편 총 70편의 자작시를 글머리로 관련된 이야기와도 함께 하였습니다.
2021년 충남 도정신문에 ‘장항선 연가’로 연재된 650자 내외 글을 1800자 내외로 재구성하여 줄여 쓰기와 늘여 쓰기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장항선은 일제강점기 서해안 곡창지대의 알곡을 침탈하기 위해 개설되었지만, 귀한 생물자원과 문화유산을 찾는 길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현재 기차가 정차하는 역, 정차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역, 아예 역에 대한 흔적이 사라지고 기억으로만 남은 역이 장항선 연가 기찻길을 따라갑니다.
충청도에는 오래전부터 시절이라는 말이 있었다. 시와 때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여 상황이나 도리에 맞지 않게 말하거나 처신하는 경우를 일컫는 말이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절기와 함께 하늘과 땅의 이치를 궁리하고 순응하며 살았다. 절기와 관계없이 꽃 피고 열매 맺어 물질의 풍요를 누리면서 정신의 빈곤을 초래하였다.
빠름과 효율을 추구하는 디지털 문명은 자연의 질서에 혼돈을 불러들였다. 시는 절기를 잊어 시절이 되지 않도록 아날로그 감성으로 현상에 다가서는 촉수가 될 것이다.
절기와 오감으로 소통하는 삶은 느림과 기다림의 다소곳한 서정의 자태이면 좋겠다. 문명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받은 상흔의 순화와 치유도 절기와 소통하는 서정의 몫일 것이다.
― 2018년 가을
안과 밖 다 보이던 섶 울타리
욕망과 차별의 벽으로 엉기어
소외와 편견이 균류로 번졌다.
강남 제비 다시 돌아올는지 몰라
더불어 살던 자연의 순리 헤집어
속도와 효율 좇다 이변을 불렀다.
날로 심란한 인문 자연 사회 환경
작은 생선 굽듯 살펴야 할 다스림
자고새면 말의 가시가 현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다.
서로 곁 보듬어 더께 닦으며
뿌리의 행방을 되새겨야 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