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일곱 살의 나는 가히 세상의 진리를 다 깨우쳤다고 자부했을 법하다. 학교에 들어갔고 글을 읽고 쓰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이후 매일매일 공책에다 큼직한 글씨로 일기를 써 가며 글쟁이를, 나중에는 소설쟁이를 꿈꾸었다. 내 몸뚱어리처럼 왜소한 중량감이지만 첫 장편을 내놓는 지금에야 비로소, 내가 소설쟁이임을 실감한다. 지금까지 이 여정에 동반자가 되어 준, 또 앞으로도 되어 줄, 얼마 되지 않지만 그렇기에 더욱더 소중한 독자들에게 감사한다.
과거는 우주보다 낯설고 멀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의 기록은 필연적으로 ‘픽션’이다. 기억이란 그토록 위태롭고 불안하며 우리는 언제나 과거를 정당화하고 미화하려 든다. ‘기교’는 모든 ‘픽션’에 본질적인 요소인지도 모르겠다. 과거란 그것이 1분 전이든 10년 전이든 이미 살아버린 지난 시간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소설의 화법과 문체는 아무튼 시간 사용법에 따라 결정된다. 잃어버린, 그렇기에 낯선 시간을 찾아 헤매는 소설적 작업을 꼭 한 번은 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 자전소설이자 성장소설인 이 글 속의 많은 사람이 저세상으로 갔고 ‘제동댁 김점순’은 부산시 영도구에서 아흔여섯번째 해를 맞이하고 있다. 생애 주기 중년에 이른 ‘김연수’는 1981년 3월 난생처음 학교에 첫발을 들여놓은 당찬 꼬마 ‘김연수’를 생각한다.
그렇다, 전생은 전쟁이었다. 옛 전장의 자욱한 담배 연기에 질식할 것만 같다. ‘취한 배’를 타고 지옥을 떠돌던 ‘한철’, 청춘. 우리 말의 ‘푸르다’는 색깔에 앞서 맑음과 밝음을 뜻하지 않나 싶다. 서슬 퍼런 야망과 파란 욕망, 몸과 마음의 시퍼런 멍, 핀란드만의 푸릇푸릇한 관목숲과 검푸른 밤바다, 푸르스름한 우윳빛의 희붐한 페테르부르크 백야, 하얀 자작나무의 연둣빛 잎사귀들, 내 고향 거창의 쪽빛 하늘과 초록빛 논두렁, 어디를 가든 항상 내 방의 으슥한 구석에서 번식하던 회청색 곰팡이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