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 우리는 과거에 서로 알지 못했어요. 지금도 서로 얼굴을 맞대지 못하고 있죠. 하지만 안다고 꼭 만나는 것도 아니고 만난다고 해서 안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죠. 타이베이에 있다고 가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프리카에 있다고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에요. 단지 서로를 이해하고 느낀다면 하늘 끝에 있어도 이웃이나 마찬가지죠!
“친구들, 우리는 과거에 서로 알지 못했어요. 지금도 서로 얼굴을 맞대지 못하고 있죠. 하지만 안다고 꼭 만나는 것도 아니고 만난다고 해서 안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죠. 타이베이에 있다고 가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프리카에 있다고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에요. 단지 서로를 이해하고 느낀다면 하늘 끝에 있어도 이웃이나 마찬가지죠!”
이런 속세의 인연이 내가 글을 계속 쓰게 하는 힘이 되었다. 부모님의 은혜를 고작 한바탕 속세의 인연에 비유한다면 무정하다는 소리를 듣는 걸 면하기 어려울 것이고, 부모님은 이 글을 보고 틀림없이 또 상심하시겠지. ‘속세의 인연 역시 중요하다는 것, 구름과 연기처럼 금세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것’은 모른 채 말이다. 당신들의 자식은 이 끊을 수도 벗어날 수도 없는 연분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좋은 사람이 될 것이다. 자식은 부모의 눈 속에서 부모의 생명보다도 귀하고, 부모는 자식의 마음속에 결과적으로는 그 사랑의 부담을 지운다. 지난날 내 부모님의 상처를 보상할 방법은 없다 해도, 앞으로 펼쳐진 길은 이제 평안하고 성실하게 밟으며 다시는 그분들의 애를 태우지 않으리라. ('작가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