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나는 아버지를 얘기하고 싶었다.
아버지는 말이 없고, 농부였고, 권력이 없고, 명예도 없고, 나를 무릎아래 앉힌 적도 없고, 무릎아래 앉히고 말씀을 하신 적도 없고...
나는 거역할 아버지가 없고, 반항할 아버지가 없고, 퍽퍽 두드릴 아버지가 없고...
있는 듯 없고, 없는 듯 있고, 새벽에 밭에 나갔나 싶으면 금세 헛간에서 나오시고, 새참을 드시나 싶으면 금세 전용 자전거가 안 보이고...
물 같은 아버지, 바람 같은 아버지, 비 같은 아버지...
지긋지긋한 배추들, 토마토들, 무들은 금세 뽑았나 싶으면 돋아나고...
나는 아버지를 곁눈질한 솜씨로 도깨비방망이 하나를 속에다 심었다.
나는 아버지를 곁눈질한 솜씨로 가시가 뾰족한 도깨비 방망이 하나를 무럭무럭 키웠다.
도깨비방망이가 둔갑한 이 시집을 아버지께 바친다.
초판 시인의 말
모종들의 성장사는 순환하는
자연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그림이 없는 그림틀들을
관람하는 것처럼 냉소적이다.
지루하고 권태롭다.
내가 달아난 적이 있다면
그들로부터이다.
그러나 누가 본 적이 있는가.
꽁무니에 붙은 길의 절개지를.
내 자연은 순환하지 않는
자연이다.
2002년 4월
조말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