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당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꿈은 세 가지였어요. 초등학교 땐 선생님이 되고 싶었고 중학교 땐 《베니스의 상인》을 읽고 변호사를 꿈꾸기도 했답니다. 그러다 직접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었어요. 작가가 되면 선생님 이야기도 쓸 수 있고 변호사 이야기를 쓸 수도 있을 것 같았어요.
어린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걸 좋아합니다. 때로는 그 친구들이 책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지요. 지은 책으로는 《피카소 아저씨네 과일가게》 《셰익스피어 아저씨네 문구점》 《퀴리 아줌마네 오두막 연구소》 《질문만 하는 바보》 《행복 뽑기 기계》 《엄마는 비밀 요원》 《우리나라 첫 번째 신부 김대건》 《엄마 사랑》 《아빠 사랑》 등이 있어요.
“대관령에서 한양까지 9백 리, 걸어서 빠르면 아흐레, 늦으면 보름도 걸리는 길입니다. 그 시절에 나이키를 신었겠습니까, 비행기를 탔겠습니까. 여자 몸으로 아이들까지 데리고 대관령을 넘어왔을 것 아닙니까? 매번 가마를 탔다는 증거도 없습니다. 양반집 안방마님이라는 말로 현실을 가리려는 것은 현대인들의 지나친 억측이 아닐까 합니다.” 긴 세월, 신사임당과 율곡의 업적을 전파하는 데 앞장서온 '율곡교육원' 정문교 원장은 인터뷰 내내 안타까운 기색이었다. 요컨대 현대인의 잣대로 한 여인의 숭고한 삶을 함부로 재단하려 들지 말라는 뼈 있는 항변이었다. 취재를 마치고 대관령을 돌아 나와 봉평으로, 파주로, 사임당의 흔적을 되짚어보면서 불쑥불쑥 가슴이 먹먹해지곤 했다. 5백 년 전, 이 땅에 살다 간 한 여인의 뜨거운 숨결이 게으름과 변명에 길들여진 나약한 영혼에 준열한 꾸짖음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