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의 지휘자인 카라얀은 매우 일찍 피아니스트로 데뷔한 뒤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음악원에서 공부하고 이어 빈 대학에서 프란츠 샬크에게 배웠다. 울름에서 [피가로의 결혼]을 지휘하여 화려하게 되뷔하였고 음악감독으로 시와 계약을 맺었다.
1948년부터 1950년까지 그의 경력은 새롭게 넓혀져 잘츠부르크 음악제와 밀라노 스칼라 극장에서 데뷔했고, 빈 필하모니 관현악단과 런던 교향악단을 이끌고 연주 및 녹음을 하였다. 그는 푸르트뱅글러의 후임으로 베를린 필하모니 관현악단을 이끌다 1955년 종신 지휘자가 되었으며 이와 함께 빈 국립가극장과 잘츠부르크 음악제의 예술감독도 겸해 맡았다.
그는 누구보다 앞서 새로운 시청각 기술을 인정하여 연주의 연장을 위해서 그것을 풍부하게 활용했고, 그러한 예술 속에서 카라얀의 세부에 대한 정확성을 찾아낼 수 있다. 음의 관능성과 극적 강렬함이 서서히 갈고 닦여져 각 작품의 이상적이고 뜨거운 윤곽과 잘 합치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