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자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월간지 〈샘이 깊은 물〉 기자를 거쳐 출판 기획과 편집, 번역 일을 해왔다. 옮긴 책으로 《모차르트, 그 삶과 음악》 《말러, 그 삶과 음악》 《프로코피예프, 그 삶과 음악》 《말러 앨범》 《클래식, 고음악과의 만남》 《피아노의 역사》 《장편소설가 되기》가 있다.
잘 만든 한 편의 음악 다큐멘터리 같은 책
‘고음악early music’은 본디 음악의 시작에서 바로크시대까지를 통칭하는 용어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 구분을 넘어, 당대 악기와 연주 방식을 복원한 음악을 뜻하기도 한다. 이 용어에 정확한 음악사적 정의를 내릴 수 없는 데에는 태생적 이유가 있다. 애초에 ‘옛 음악은 옛 악기와 당대 연주법으로 연주하자’는 원전authentic 연주의 물결이 일면서, 그러한 노력으로 재조명한 음악을 통칭해 얼리 뮤직이라 불러 왔기 때문이다. 그 태두인 영국인 데이비드 먼로가 1967년에 창단한 연주단이 ‘얼리 뮤직 콘소트 오브 런던 Early Music Consort of London’이고, 이를 우리말로 ‘런던 고음악 연주단’이라 부른 데에서 ‘얼리뮤직’의 번역어로 ‘고음악’이 나왔으리라고 본다. 그 뒤로 1980년대에 고음악 바람이 불면서 아카데미 오브 에인션트 뮤직의 크리스토퍼 호그우드, 잉글리시 바로크 솔로이스츠의 존 엘리어트 가디너 등 이 분야 스타덤에 오른 지휘자들이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의 음악에까지 연구 범위를 넓혀 대중적 성공을 거두자, 시대 범위를 떠나 연주 양식의 의미에서 고음악이라는 용어를 더 많이 쓰게 된 실정이다.
포노가 펴내는 <클래식, 시대와의 만남> 시리즈에서 이 책이 담당한 ‘고음악’의 시대는 정확히 말해 ‘중세.르네상스 시대’임을 밝혀둔다. 간단히 이야기해서, 음악의 가장 중요 요소인 ‘가락’의 발상에서 개화까지를 다루고 있다고 여기면 될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아득히 먼 시대의 음악과 현대 독자 사이를 글로 이어주려고 상상력과 재치를 많이 발휘챘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찬트의 본질은 소리 높여 말하는 것이다. 그 점에서 18세기 오페라에 등장하는 정교한 대사체 노래 형식인 레치타티보에 가깝다. 레치타티보의 기능은 아리아와 아리아 사이를 줄거리로 이어주는 것이다. 현대의 랩이나 힙합과 한 부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모차르트, 에미넴, 성 암브로시우스는 멜로디보다 가사를 앞세웠다는 점에서 뜻밖의 동지들이다. 그들의 음악을 들을 때 레치타티보 대목을 따라잡지 못하면, 피가로의 결혼식 날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화물 주차장의 가난한 백인들이 왜 분노하는지, 그리스도의 메시지가 얼마나 굉장한 것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다.”(제2장 ‘교회와 음악’에서)
모차르트도 살아생전에 전혀 알지 못했던 고음악의 세계를 훨씬 후대의 우리가 이렇게 풍성하게 누릴 수 있다는 것, 그것도 같은 레퍼토리를 다양한 연주 스타일로 골라가면서까지 취향껏 누릴 수 있다는 것, 새삼 모차르트에게 참 송구한(?) 사실이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저자의 손에 이끌려 일면식도 없는 에미넴, 성 암브로시우스와 ‘동지’로 분류되다니! 이 책을 읽다 보면 이처럼 시대를 넘나드는 적절한 비유에 감탄하게 되는 부분들이 더러 있다.
이 책은 잘 만든 음악 다큐멘터리와도 같다. 어떤 시대가 어떤 음악을 낳았는지를 적절한 역사 문헌의 한 토막을 통해 감각적으로 짚어준다. 비잔티움 제국의 안나 콤네나가 쓴 역사서 서문, 십자군의 대학살이나 에스파냐의 멕시코 정복 현장 목격담, 헨리 8세가 스스로 영국교회의 수장 자리에 오르는 과정에 협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수형에 처해진 토머스 모어의 마지막 모습 같은 ‘역사 한 장면’을 이 책에서 마주할 수 있다. 이러한 활달하고 입체적인 저술 방식에 두 장의 음반이 덧붙었으니, 독자들은 지루하지 않게 중세 골짜기를 지나 르네상스 봉우리까지 오를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 과정에서 골짜기에 뜻밖에 아름다운 들꽃이 많이 피어 있음에 놀라고 행복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