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24년 정년퇴임했다. 재직 당시 교수회 의장으로 영남대 민주화를 위한 싸움을 전개하였고, 재단의 징계와 사법적 제재에 맞서 계속 투쟁해 왔다. 『녹색평론』 편집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십여 년 전부터 문경의 산촌 마을에 터를 잡아 대구를 오가며 텃밭 농사를 짓고 있다. 현재 대구환경운동연합 상임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역서로 『소농, 문명의 뿌리』(웬델 베리), 『우리 시대 문화 이론』(앤드류 밀너), 『쉰들러 리스트』(토머스 케닐리), 공저 『탈식민주의: 이론과 쟁점』 외에 다수의 논문과 『녹색평론』 기고 글 등이 있다.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근본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우리와 세계의 관계를 바꾸기 위한 최선의 방책을 모색하는 일이다. 웬델 베리 저작의 의미가 바로 거기에 있다. 자본주의 근대에 저항하는 가장 급진적인 방식은 문명의 기초이자 맹아를 돌아보고 문화적 유전자의 훼손을 치유하여 다시금 생성?성장?쇠퇴?부활의 순환 패턴을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웬델 베리는 이러한 순환적 치유의 잣대를 기준으로 농기업, 대학, 환경운동단체, 에너지, 테크놀로지 등 다방면의 제도적 관행 또는 절차에 근원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웬델 베리가 대학을 떠난 이유는 대학이 세계의 실패와 상처를 치유하는 지식과 실천을 보여주기는커녕 오히려 세상의 상처를 덧나게 하는 원인이라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대학이 오늘날 무슨 일을 하는가는 웬델 베리가 기술한 미국 국유지 교부 대학(주립대학)의 역사에 잘 드러나 있다. 국가가 국유지를 교부하여 대학을 설립한 원래 목적은 농촌 지역의 발전과 농민의 필요 충족이었지만, 오히려 대학은 농촌 공동체와 소농의 파괴에 동원되었음을 미국 대학의 역사는 보여준다. 역사적으로 미국 주립대학 형성 과정은 이처럼 자본 확장과 권력 집중을 제도화하는 과정이었다. 자본 확장과 권력 집중은 세계의 실패다. 학생들에게 전문가적 기술을 교육하는 것으로 그치는 대학은 문명 세계의 실패와 상처를 더욱 심화시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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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보편 정신을 대변한다는 인문학은 변방으로 변방으로 밀려나 이제는 대학의 제도권에서 소멸 단계에 이르렀다. 종합대학으로서의 면모를 위하여 교양의 분칠 작업을 맡았던 시간 강사들은 대학의 노예로 남아 있다. 나는 웬델 베리로부터 무엇을 배웠는가? 인문학과 인문학을 가르치는 시간 강사들을 제도권 안으로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통합의 원리에 의해 대학을 재건해야 한다. 주변부로 밀려나 있는 인문학과 시간 강사들의 존재는 웬델 베리의 농적 가치를 구현시킬 수 있는 원천이기 때문이다. 대학이 그렇게 할 수 있을 때 대학은 자본의 동맥경화를 치유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대학 안의 인문학자들은 분과학문의 영주로서 자신들의 성벽을 너무 높이 쌓아 올렸다. 그들 스스로 자신의 지위와 안위를 보장해 줄 것으로 믿는 안전판을 허물 수 있을까? 주인과 노예의 신분적 관계를 유지해 온 정규직 교수들과 시간 강사들의 분열은 치유될 수 있을까? 우리는 너무 먼 곳까지 와 버렸는지 모른다.
인문학이 사라지고 실용지식 기술자들에게 점령된 대학은 실용의 폭주를 거듭하면서 무한대의 자본을 필요로 할 것이다. 피터 드러커의 예언처럼 국가와 사회는 대학의 비용을 결국 충당하지 못할 것이다. 전적으로 자본의 힘으로 유지되던 대학은 그 순간 사라질 것이다. 모리스 버먼이 미국의 소멸 이후에나 소로, 루이스 멈포드, 웬델 베리 같은 이들의 사상은 소용이 있을 것이라고 한 것처럼, 웬델 베리의 농적 가치는 대학 소멸 이후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지금 웬델 베리를 읽는다는 것은, 슈마허의 표현처럼, 바람이 불고 물이 들어올 때 띄울 수 있는 배와 돛을 준비하는 일인지 모른다.
- 역자 후기 「우리는 웬델 베리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