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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카미유 클로델 (Camille Claudel)

국적:유럽 > 중유럽 > 프랑스

출생:1864년

사망:1943년

직업:조각가

최근작
2010년 5월 <카미유 클로델>

카미유 클로델(Camille Claudel)

프랑스의 조각가. 1864년 12월 8일, 프랑스 북동부 페르-앙-타르드누아에서 루이-프로스페르 클로델과 루이즈-아타나이즈 세르보의 둘째아이로 태어났다. 가정교사 콜랭과의 인연으로 조각가 알프레드 부셰를 만나 열세 살에 처음으로 조각의 기초를 익힌다. 이 시절 <다비드와 골리앗> <비스마르크> <나폴레옹> 등 신화나 역사 속 인물들의 찰흙 소조 작품들을 만든다. 열여덟 살이던 1881년, 남동생을 모델로 본격적인 첫 작품 <열세 살의 폴 클로델> 청동 흉상을 만든다.

1883년 오귀스트 로댕을 두 번째 스승으로 맞아, 1884년 제작 조수 자격으로 로댕의 아틀리에에 들어간다. 이 무렵 <늙은 엘렌>(1882) <나의 남동생>(1884) <지강티>(1885) 등의 작품이 탄생한다. 로댕의 <지옥의 문> <칼레의 시민> 등 작품의 제작에 참여하고 모델 역할도 했으며, 자신의 작품 역시 왕성하게 창조해나간다. 두 사람은 열정적으로 작품활동을 함께하며 못지않은 열정으로 사랑을 나눈다. 그러나 로댕은 오랜 동반자인 로즈 뵈레의 손을 놓지 않았고, 그 때문에 결별과 만남을 반복하던 카미유는 1898년경 그와 완전히 관계를 끊고 튀렌 거리 63번지에 아틀리에를 빌린다. 이때를 전후로 <클로토> <중년> <페르세우스> <깊은 생각> <난롯가에서의 꿈> <베르툼누스와 포모나>(<샤쿤탈라>의 대리석 버전) <상처 입은 니오비드> 등을 완성한다.

활발한 창작활동 속에서도 늘 재정적 지원에 목말라했고, 로댕에 대한 증오와 배신감에 시달렸으며, 예술가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하지 못했다는 불안감으로 점차 불안정한 정서 상태에 빠져든다. 급기야 1913년 3월, 가족의 요청으로 빌-에브라르 정신병원으로 끌려간 카미유 클로델은, 이듬해 몽드베르그 정신병원으로 옮겨진 뒤 1943년 10월 19일 삶을 마감하기까지 그곳에서 나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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