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읽고 쓰고 옮기면서 살려고 한다. 지은 책으로 『아무튼, 사전』 『우리는 아름답게 어긋나지』(공저), 옮긴 책으로 『도시를 걷는 여자들』 『하틀랜드』 『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라라와 태양』 『달빛 마신 소녀』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호텔 바비즌』 『깨어 있는 숲속의 공주』 『모든 것을 본 남자』 등이 있다. 『밀크맨』으로 제14회 유영번역상을 수상했다.
(...) 여러 주문과 설명을 담은 저자의 긴 메일을 이 책 번역을 시작할 때 출판사를 통해 전달받았다. 저자가 번역에 신경을 쓰고 세심하게 도움을 주려 하는 것이 무척 고마웠다. 그런 한편 이 짧은 소설에서 저자가 말하고 싶지만 말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많은지, 드러내지 않고 암시하고자 한 부분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되었고 빙산의 일각 같은 이 글을 과연 어떻게 옮겨야 할지 난감했다. 이 짧은 소설은 차라리 시였고, 언어의 구조는 눈 결정처럼 섬세했다. 잘못 건드리면 무너지고 녹아내릴 것 같았다. 클레어 키건은 무수한 의미를 압축해 언어의 표면 안으로 감추고 말할 듯 말 듯 조심스레 이야기한다.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고 미묘하게 암시한다. 두 번 읽어야 알 수 있는 것들, 아니 세 번, 네 번 읽었을 때야 눈에 들어온 것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번역을 하기 위해 이 책을 무수히 읽으면서 내가 알게 된 것을 번역에 설명하듯 담지는 않으려고 애썼다. 그랬다가는 클레어 키건이 의도한 대로 삼가고 억누름으로써 깊은 진동과 은근한 여운을 남기는 글이 되지 못할 터였다. 그래서 독자들도 이 책은 천천히, 가능하다면 두 번 읽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얼핏 보아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