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인류학자. ‘인문공간 세종’ 연구원. 대학원에서는 한국근대문학을 전공했다. 마르셀 프루스트와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을 읽으며 위대한 작가가 되려고 했으나 실패!^^ 모든 글은 시도로서의 의미가 있다는 이치 하나를 얻고 근대문학의 산에서 하산했다. 그때부터 어딘가에 있을 훌륭한 진리를 찾아다니는 대신 발밑의 작은 것들을 바라보았다.
지금은 ‘인문공간 세종’에서 만난 친구들과 동화, 전설, 민담 등 옛이야기를 읽으며 밥하고 청소하기의 인류학을 한다.
마르셀 프루스트에 대한 책(『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되찾은 시간 그리고 작가의 길』)과 카프카에 대한 책 두 권(『자유를 향한 여섯 번의 시도: 카프카를 읽는 6개의 키워드』와 『카프카와 가족, 아버지의 집에서 낯선 자 되기』)을 냈으며, 『그림 동화』를 인류학적 시선으로 읽은 책(『시작도 끝도 없는 모험, 『그림 동화』의 인류학』)을 시작으로 『슬픈 열대, 공생을 향한 야생의 모험』과 『신화의 식탁 위로』를 펴내는 등 ‘인류학’을 모험 중이다.
“동화 속에서는 어떤 일도 무의미하지 않지만 어떤 일도 결정적으로 중요하지 않다. 왕자와 공주는 그저 주어진 미션을 치르고만 있다. 왜일까? 공주가 난쟁이들 집에서 밥하고 빨래를 하는 까닭은 왕자를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들은 다만 그렇게라도 해서 ‘오늘’ 먹을 것을 구한 자에게 ‘내일’ 낯선 사건 하나가 일어난다는 것을 본다. 숲은 거듭 묻는다. ‘이런 혼돈에서도 살 수 있겠니?’, ‘저런 곤란에서도 살 수 있겠니?’ 그런 질문 앞에서 왕자와 공주는 어떤 미션도 덤덤하게 통과한다. 근심도 걱정도 자책도 원망도 없는 세계, 그것이 동화였다. 나는 숲의 카오스를 두려워하지 않는 당당한 주인공들이 부럽기 시작했다.”
“동화는 푸구이의 경우처럼 콩이 어떻게 운명애를 깨우치는지를 보여 주지는 않는다. 그저 콩 한 알이 크게 웃었다고만 한다. 그래서 더욱 놀랍다. 콩 하나가 생사의 모순과 필연을 통찰하는 장면을 단 한 줄로 압축할 수 있다니! 나는 지켜야 할 그 어떤 최후의 도덕률도 없기에, 만물의 운명이 갖는 온갖 모순을 두려워하지 않기에, 동화가 좋다. 동화는 인간이 돌아다닐 수 있는 세계가 한없이 넓다는 것을, 그 안에서 잘 살아 보기 위한 삶의 길이 참으로 다채롭다는 것을 깊이 이해한다. 그래서 읽을 때마다 입가에 미소가 끊이지 않는다. 매일매일 읽고 싶다. 나는 수술실에서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원에서 육아법을 익히며 엄마로서 첫발을 내딛었지만, 정말 배워야 할 것은 옛이야기 속에 있음을 강력하게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