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아름다운 이곳에서 조금은 다른
제주는 더 이상, "아파트 담벼락보다는 바다를 볼 수 있는 창문이 좋"은 낭만의 섬이 아니다. 습지를 메우고, 숲을 베어내는 자리에 세워진 가림막에는 나무와 숲, 더 나은 내일을 약속하는 아이 이미지와 글이 새겨져 있다. 숲을 베어내는 자리에 사용되는 이미지가 숲이라니.
그럼에도 제주는, 지구는 여전히 아름다워 눈물겹다. 이 글은 아직 아름다운 이곳에서 조금은 다른 삶을 궁리해보려는 나날의 기록이다. 생활의 가림막, 세계의 가림막 뒤로 사라지는 빛나는 생의 순간들을 채집해보려 한 흔적이다. 내일은 써야지 미뤄둔 것들의 목록을 오늘 살아보고자 한, 오늘 속에 도래한 내일에 대한 미시감의 기록일 수도 있겠다. 내일 쓰게 될 일기에는 이 섬과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근심보다는 안도가 담겼으면 하는 기도이기도 하다. 그곳의 당신은 어떤가요, 묻는 안부이거나 당신은 어떤 내일을 꿈꾸나요, 하는 에두른 질문이어도 좋겠다.
이 책을 쓰면서 아름다움에 너무 많은 채무가 생겼다. 이 섬의 아픈 역사와 사람들, 바다와 땅의 온갖 생명, 파도와 바람, 노을과 구름, 익어가는 귤의 빛깔과 멀구슬나무의 향기, 새로 사귄 이웃들, 그이들의 언어, 그리운 이름들……. 그리고 살가운 추천사를 써준 벗, 문소리 씨의 다정한 아름다움! 아이와 함께 내가 조금이라도 성장했다면 이 모든 존재 덕분이다. 무엇보다 제주라는 공간에서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글을 가장 먼저, 앓는 땅의 곁에 놓고 싶다.
동백 씨앗 영그는 제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