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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말로(Christopher Marlowe)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보다 두 달 먼저인 1564년 2월 캔터베리(Canterbury) 제화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천재적이었던 그는 캔터베리 왕립학교를 졸업했으며, 케임브리지 대학의 코퍼스 크리스티 칼리지에서 장학생으로 수학했다. 작은 마을의 문법학교만 다닌 것으로 추정되는 셰익스피어와 달리, 말로는 대학 출신의 ‘대학재사들’(The University Wits) 중 한 사람으로 라틴어와 고전 문학에 능통했던 지성적인 문인이자 극작가였다. 런던 연극계에 몸을 던진 그는 1586년부터 죽기 전인 1593년까지 ≪디도, 카르타고의 여왕≫(1586) 포함 6편의 극을 무대에 올리며 런던의 극장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말로에 대해서는 그의 희곡들이 무대에서 굉장한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 외에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1593년 말로는 의문의 사고로 29세 나이에 숨을 거두었다. 그해 5월 30일 뎁퍼드(Deptford)의 선술집에서 잉그램 프리저(Ingram Frizer)와 벌인 사소한 칼싸움 끝에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이는 토머스 키드의 증언에 따라 이단 혐의로 추밀원이 말로의 체포 영장을 발부한 지 열흘이 조금 더 지난 뒤였다. 말로는 약 9년 동안 시작과 극작 활동을 했지만 영국 문학계와 무대에 끼친 영향은 적지 않다. 비평가들에 따르면, 그는 ≪베니스의 상인≫을 비롯한 셰익스피어의 여러 작품들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 뿐 아니라, 파우스터스, 바라바스, 탬벌레인 대왕과 같은 욕망에 충실한 인물들을 창조함으로써 영국 무대에 최초로 근대적 인간을 소개하고 전복과 위반의 르네상스 정신을 극화했다. 그 천재성에도 불구하고 셰익스피어의 명성과 이른 죽음으로 빛나는 이름을 남기지 못했던 말로에 대해 오늘날 평자들은 ‘더 오래 살았더라면 셰익스피어에게 뒤지지 않는 극작가로 성장했을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표현한다.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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