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텍스트는 내가 읽는 것이 아니라 나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 책에서 다룬 모든 텍스트가 그랬고, 그 느낌이 비평을 쓰게 했으며, 쓰면서 내 안의 무언가가 바뀌었다. 처음으로 비평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무렵 일기장에 자주 적은 문장이 있다. 좋은 것을 좋아하고, 좋아하는 것을 사랑하고 싶다. 이보다 내가 문학비평을 하는 이유를 알맞게 설명하는 문장은 없다. 텍스트에 숨어 있는 미덕(좋은 것)을 발견하는 눈, 그 미덕이 주는 체험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마음(좋아하는 것), 그 마음을 나의 언어로 전환하는 행위(사랑하는 것). 미덕의 발견, 체험의 인정, 언어의 전환이라는 세 가지 연속적인 과정이 나에게는 사랑이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비평은 텍스트에 대한 나의 사랑을 수행하는 툴이다.
2023년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