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나 경희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82년 《세계의문학》에 「우리들의 떨켜」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그 집 앞』 『꽃그늘 아래』 『틈새』 『너 없는 그 자리』, 장편소설 『길 위의 집』 『저녁이 깊다』 『기억의 습지』, 산문집 『그냥 걷다가, 문득』 등이 있다.
오래전 인도양의 한 섬에서 홀로 바닷가를 거닐던 때였다. 관광지가 아니라서 사람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 해변이었다. 맑은 바닷물 속에서 헤엄치는 열대어는 하늘빛보다 더 파랗고, 소라껍질을 집 삼아 드나드는 게의 눈조차 파랬다. 몸 빛깔이 파란 외계인이 있을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느릿느릿 걸었다. 해풍 때문에 셔츠가 배의 돛처럼 부풀어오르고, 셔츠 호주머니에 주워 넣은 조개껍질 두 개가 쟁강거리며 풍경 소리를 냈다. 열대의 태양으로 미적지근해진 바닷물이 발목을 간질였다. 바위 몇 점을 제외하곤 온통 수평선만 보일 뿐인 해변을 걷는데 문득 말이 차올랐다. 참 행복하구나, 나는 행복한 순간들을 남들보다 많이 누리는구나…… 그 말을 떠올리는 순간, 행복은 물러나고 그 자리에 사람들이 들어섰다. 이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은 사람들이었다.
산문집 교정을 보자니, 다시 그 해변에 선 듯하다. 그동안 만났던 인연, 머물렀던 순간들, 그럴 때 내 마음에 스친 무엇들…… 크고 작은 깨달음을 준 그 인연에 대한 고마움이 새록새록 밀려와 따뜻한 물처럼 발을 적신다. 물론 바늘 끝 하나 꽂을 자리 없이 딱딱하게 오그라들었던 순간들도 있었고, 그만 길에서 내려서고 싶은 순간도 없지 않았으나, 사람과 생은 내겐 여전히 경이롭다. 행복하기를 바라는 만큼 생명 있는 것들의 행복을 방해하는 것들에도 자주 눈길이 머물렀으나, 놀라운 장면을 본 아이가 저도 모르게 입을 헤벌리듯, 삶이라는 길을 걸어오며 그런 표정을 짓는 순간이 잦았음을 내가 쓴 글을 읽으며 새삼 깨달았다. 그건 다름 아닌 나 자신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