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바디우는 1937년 모로코 라바에서 태어났다. 파리 고등 사범 학교를 졸업한 후 파리 8대학과 파리 고등 사범 학교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는 파리 고등 사범 학교 부설 프랑스 현대 철학 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사르트르주의자였던 20대 초반에는 연합 사회당에 적극 참여했고, 1960년대에 들어서는 알튀세르의 과학적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을 받았다가, 68혁명 이후에는 열렬한 마오주의 투사가 된다. 1970년대 말 이후 혁명적 정치 운동이 쇠퇴하자 기존의 마르크스주의와 다른 새로운 길을 모색하던 그는 마침내 1988년 『존재와 사건』과 더불어 그만의 철학적・정치적 비전을 제시하기 시작한다. 이후 발표된 다수의 저서들과 활발한 강연 활동을 통해서 프랑스 내외의 중요한 정치적 사안에 꾸준히 개입하는 한편, 21세기 의회 민주주의 체제와 신자유주의 체제에 대해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강력한 비판을 하고 있다.
바디우는 가히 21세기의 플라톤이라고 불릴 만하다. 그의 사유는 크게 다음의 두 가지를 겨냥한다. 첫째, 마치 플라톤이 보편적 진리를 부정한 소피스트들의 상대주의에 대항하여 그랬던 것처럼, 바디우는 철학, 진리, 주체의 종말을 선고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상대주의에 대항하여 철학의 가능성, 보편적 진리, 진리에 충실한 주체를 구해 내고자 한다. 둘째, 마치 플라톤이 아테네의 민주정에 대항하여 이데아론에 기초한 국가를 제시했던 것처럼, 바디우는 현대의 의회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항하여 진리에 기초한 혁명적 정치의 가능성을 선언하고 그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 두 가지를 이루기 위하여 바디우는 ‘철학=존재론=수학(집합론)’의 등식으로부터 출발하여 존재에 대한 합리적인 과학을 세운다. 즉 칸토어와 폴 코언의 현대 집합론의 성과를 기반으로 존재론적 사건을 합리적으로 개념화하는 일에 성공함으로써, 새로운 것의 출현인 사건의 발생과 그로 인한 진리의 생산 그리고 생산된 진리에 충실한 주체의 등장을 합리적으로 사유할 수 있도록 길을 연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합리적인 사유가 가능하게 된 사건, 진리, 주체는 그에게 있어서 진리에 기초한 혁명적 정치의 이론적인 근거를 마련해 준다. 요컨대, 철학이 새롭게 건설될 수 있게 되었고, 사건, 진리, 주체에 대한 합리적인 사유가 가능해졌으며, 이를 통해 혁명적 정치 또한 시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_ 첫 번째 길 바디우의 사유를 정확히 이해하고 그의 저서들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의 존재론, 다시 말해 그의 세계관부터 이해해야만 한다. 단언컨대, 이 길 말고 다른 길은 없다. 바디우의 존재론은 독자를 곧바로 그의 기념비적 저서 『존재와 사건』으로 이끈다. 대부분의 현대 철학자들이 근대의 합리적 이성을 비판하면서 철학의 종말, 진리의 부재, 주체의 죽음을 거론할 때, 바디우는 거의 유일하게 근대의 그것과 다른 새로운 합리주의를 제시하면서 철학을 긍정하고 진리와 주체를 살려 낸다. 그에 따르면, 수학자 본인들은 몰랐지만 수학은 사실 존재론이었다. 『존재와 사건』에서 바디우가 현대 집합론의 성과에 기대어 존재에 대한 사유를 시도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따라서 독자는 『존재와 사건』을 읽을 때, 철저하게 수학적 합리성에 근거하여 사건이 과연 어떻게 발생하는지, 사건을 통해 등장하는 명명 불가능한 다수가 어떻게 기존의 상황을 변화시켜 가는지, 이때 진리와 주체는 어떻게 출현하는지, 그리하여 마침내 상황의 혁명적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한 이론적 근거가 어떻게 마련되는지에 대한 바디우의 합리적인 설명을 집요하게 따라가야만 한다. 한편 바디우의 존재론에 대한, 말 그대로 끝까지 간 완벽한 이해를 원하는 독자는 『존재와 사건』을 읽은 후 (2014년 6월 현재까지는 다음 두 권의 책이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았지만) 『일시적 존재론에 대한 소고』와 『세계의 논리』를 읽을 것을 권한다. 『일시적 존재론에 대한 소고』는 바디우의 존재론 1부에 해당하는 『존재와 사건』과 2부에 해당하는 『세계의 논리』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는 과도기적 저서다. 바디우는 이 책에서 들뢰즈, 스피노자, 칸트 등, 여러 철학자들의 존재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다음 자신이 무엇 때문에 존재론(『존재와 사건』)에서 논리학(『세계의 논리』)으로 나아가는지 설명하고 있다. 『존재와 사건』이 철학의 새로운 가능성과 보편적 진리, 그리고 진리에 대한 충실함을 겨냥한 책이라면, 『세계의 논리』는 보편적 진리가 세계 속에서 개별적이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출현하는지, 이렇게 출현한 진리의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현상은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책이다. 즉 『존재와 사건』이 순수 존재론이라면, 『세계의 논리』는 진리의 출현 논리를 담은 논리학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주로 존재론의 차원에 머물렀던 『존재와 사건』과 달리 『세계의 논리』는 보다 더 실천적인 방향으로 나아간다. _ 두 번째 길 『존재와 사건』, 『일시적 존재론에 대한 소고』, 『세계의 논리』의 순서는 바디우의 존재론을 처음부터 끝까지 차근차근 이해하고자 할 때 따라가야 할 정석 코스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책들을, 우리말 번역본 없이 읽는다는 것은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 사실상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위의 과정을 대신할 대안을 아래와 같이 제안해 본다. (이 대안을 따를 경우, 위의 첫 번째 길은 나중에 『세계의 논리』까지 우리말로 번역이 다 된 이후에, 또는 차라리 독자가 STEP 3까지 다 거친 이후에 마지막으로 바디우 이해의 정점에 도달하기 위해 따라야 할 단계로 보면 될 것이다.) 어찌 되었든 바디우의 존재론에 대한 선(先)이해가 그의 저서들을 제대로 읽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는 사실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따라서 위의 첫 번째 길을 대신할 현실적인 대안으로, 우선 바디우의 저서 『들뢰즈 ? 존재의 함성』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역자가 부록으로 실은 「알랭 바디우의 『존재와 사건』 소개」, 「『존재와 사건』 용어 사전」을 읽고, 아울러 소논문집 『포스트모던의 테제들』에 실린 글 가운데 「바디우 ? 포스트모던과 마주한 새로운 합리주의」를 읽을 것을 권한다. 이 짧은 글들을 통해 독자는 사건, 진리, 주체에 대한 바디우의 사유를 큰 틀에서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바디우의 『철학을 위한 선언』과 『조건들』을 읽고 그의 존재론에 대한 이해를 보다 분명히 할 것을 권한다. 『존재와 사건』 출판 이듬해에 발표한 『철학을 위한 선언』에서 바디우는 자신이 왜 ‘철학의 종말’이라는 지배적인 논제에 맞서 철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선언할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를 간결하고 분명한 어조로 밝힌다. 이뿐만 아니라 이 책에는 철학, 진리, 주체에 대한 바디우의 존재론적 담론이 압축적으로, 그렇지만 체계적으로 잘 요약?정리되어 있다. 따라서 독자는 이 책을 통해서 진리는 정치, 사랑, 과학, 예술의 네 가지 진리 생산 절차에 의해 생산된다는 것, 철학은 이렇게 생산된 진리의 인식 과정으로만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특정한 진리 생산 절차에 의해 철학이 봉합되었을 경우 그 특정한 절차의 지배에서 벗어나(탈봉합) 네 가지 진리 생산 절차를 한꺼번에 사유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다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다. 『조건들』에서 바디우는 철학의 존립 조건들로 기능하는 네 가지 진리 생산 절차에 대해서 보다 깊게 논의한다. 이 책을 통해 독자는 정치, 사랑, 과학, 예술이 어떻게 진리를 생산하며 어떻게 철학에 수용되는지, 풍부한 사례들을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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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단계에서 주로 바디우의 존재론에 관련된 책들을 읽었다면, 이번 단계에서는 그의 진리론에 관련된 책들을 읽도록 하자. 먼저 『비미학』이 있다. 바디우에 따르면, 예술은 진리를 생산하는 네 가지 절차 중 하나이고, 따라서 철학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진리를 생산함으로써 철학을 존립게 하는, 철학의 조건이다. 바디우가 예술을 자기 대상으로 취하는 철학을 지칭하는 표현인 ‘미학’이라는 용어를 피하고, 대신 예술이 생산한 진리를 단지 인식만 할 수 있는 철학을 지칭하기 위하여 ‘비미학’이라는 용어를 제안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중요한 것은 예술이 어떻게 진리를 생산하느냐, 그리고 예술이 생산한 진리의 흔적을 철학이 어떻게 인식하느냐는 문제에 집중된다. 실제로 독자는 『비미학』을 읽어 나가면서 시, 춤, 연극, 영화, 산문에 이르기까지 바디우가 각 예술 장르의 구체적인 작품들 속에서 진리의 흔적을 어떻게 발견하는지에 대하여, 그의 섬세하고 깊이 있는 통찰을 통해 확인해 가는 지적 즐거움을 맛보게 될 것이다. 『메타정치학 개론』은 진리를 생산하는 네 가지 절차 중 정치에 관한 책이다. 예술이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정치 또한 사유이자 진리의 생산이다. 따라서 메타정치학은, 정치에서 사유를 보지 못하고 오로지 견해들만 판을 치도록 놔두는 기존의 정치학과 반대로 토론 자체가 사유가 되고 진리의 생산이 되도록 하는 그 어떤 정치적 결심을 반드시 필요로 한다. 바디우에 따르면 메타정치학의 이 같은 전망에 완전히 부합하는 정치적 결심은 무엇보다도 먼저 의회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맞서는 결심이다. 왜냐하면 오늘날 서로 손을 굳게 맞잡은 의회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오로지 다수결로만 나아가는 견해들의 잔치에 불과한 길, 그리하여 실재적 해방을 위한 결심의 과정 또는 진리의 과정이 전무한 길이기 때문이다. 『메타정치학 개론』이 우리에게 제안하는 ‘당이 배제된 정치’는 따라서 무엇보다도 의회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는 정치적 결심으로 읽혀야만 한다. 스스로 정치적 결심을 하며 그 어떤 지배 권력에도 충성치 않는, 실재적 해방을 위해 싸우는 투사의 탄생, 이것이 이 책에서 바디우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기』는 1998년에서 2001년까지 바디우가 국제 철학 학교에서 진행했던 세미나를 정리한 책으로, 지난 20세기가 사유했던 것들을 대상으로 삼아 사건의 발생과 진리 생산의 관점에서 탁월하게 분석?숙고한 책이다. ‘실재에 대한 열정’ 혹은 ‘진리를 향한 열정’이 20세기 전체에 걸쳐 수많은 사건들 속에서 다양하게 전개되었음을 독자는 이 책을 통해 분명하게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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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에 대한 담론, 진리에 대한 담론에 이어서 이제는 마지막 단계로 주체에 대한 담론으로 넘어갈 차례다. 이 단계에서는 『사도 바울 ? ‘제국’에 맞서는 보편주의 윤리를 찾아서』(이하 『사도 바울』), 『사랑 예찬』, 『윤리학 ? 악에 대한 의식에 관한 에세이』(이하 『윤리학』)를 읽기를 권한다. 우선 『사도 바울』에 나타나는 바울은 결코 기독교에 국한된 인물이 아니다. 바디우에 의해서 바울은 사건의 주체를 전형적으로 보여 주는 형상으로 재탄생한다. 유대교의 율법적 특수주의, 로마 제국의 국가적 일반성, 그리스 철학의 이데올로기적 일반성을 모두 거부하고 보편적 진리에 충실한 사건의 주체, 따라서 모든 특수주의와 추상적인 일반성을 거부하고 진정한 보편성을 위해 싸운 사건의 주체, 바로 이것이 바디우가 오늘날 새로운 투사의 전형으로 우리에게 제시한 바울이다. 그러므로 독자는 『사도 바울』에서 유대 지방의 지엽적 종교인 기독교를 세계적 종교로 만든 근본적인 이유, 즉 바울이 행한 보편주의 정립을 읽어 내야 한다. 2천 년의 시간을 가로질러서 보편주의의 실현을 위해 싸우는 투사, 사도 바울을 만나야 하는 것이다. 『사랑 예찬』에서 바디우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행위는 존재론적으로 볼 때 참으로 위험하되 또한 참으로 매혹적인 일이라고 강조한다. 왜냐하면 기존 지식 체계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그리하여 이전의 상황을 교란시키는 진리를 생산하는 절차가 곧 사랑이기 때문이다. 예술, 정치, 과학이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 또한 진리를 생산하는 절차, 게다가 가장 일상적인 만큼 그 무엇보다 더 위대한 진리의 생산 절차다. 따라서 독자는 『사랑 예찬』에서도 우연한 만남이라는 사건에서 시작된 둘의 실존적 모험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사건의 주체, 폐쇄된 단순한 만남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개방된 진리의 공간을 새롭게 구축하는 사건의 주체, 그리하여 숭고함의 수준에까지 격상된 사건의 주체를 보아야만 한다. 특히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랑은 진리에 충실한 사건의 주체를 만날 수 있는 가장 일상적인 영역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윤리학』 역시 위의 두 책과 같은 맥락을 보여 준다. 바디우에 따르면, 윤리의 이름을 전면에 내건 인권 정치는 서구의 열강이 그들의 지배권을 유지하기 위해 고안해 낸 수작에 다름 아니다. 그에게 있어서 참된 인권은 죽음을 향한 존재라는 부정적인 규정으로부터 도출된 권리가 아니라 보편적 진리를 향한 권리, 따라서 불멸하는 사건의 주체가 누려야 할 권리다. 결국 『윤리학』에서도 독자는 진정한 의미로 삶을 존엄하게 하는 사건의 주체, 진리의 주체를 발견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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