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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 1748 ~1832
제러미 벤담의 삶:

제러미 벤담은 1748년 런던에서 태어났다. 옥스퍼드 퀸스 칼리지에서 1763년에 학사 학위, 1766년에 석사 학위를 받았다. 1769년에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지만 법조계에 입문하지 않고 저술에 몰두하여 『정부소론』, 『고리대금 변호론』, 『도덕과 입법의 원칙에 대한 서론』, 『파놉티콘』 등을 출간했다. 이외에도 형법・민법・헌법・절차법을 비롯한 법학의 주요 영역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하고, 동성애 금지법이나 구빈법 같은 구체적 법 제도의 개혁을 제안하는 수많은 글을 남겼다. 프랑스 대혁명 초기에 미라보를 비롯한 혁명 지도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명예 프랑스 시민이 되기도 했다. 1823년에 제임스 밀과 더불어 신세대 추종자들을 위한 잡지 『웨스트민스터 리뷰』를 창간했다. 그의 사후인 1838~1843년에 존 보우링이 총 열한 권으로 된 『제러미 벤담 전집』을 출판했다.

제러미 벤담의 사상:

제러미 벤담 필생의 사업은 법과 정부의 완전한 체계에 대한 이론적 토대를 탐구하는 것이었다. 법과 정부의 존재 목적은 무엇이며, 어떤 체계의 법과 정부가 완전한 것인가?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완전함의 기준 혹은 가치의 척도였다. 벤담에게 그 기준 혹은 척도는 다름 아닌 ‘공리의 원칙’ 혹은 ‘최대 행복의 원칙’이다. 공리의 원칙은 쾌락과 고통이 인간의 모든 생각과 행동을 지배한다는 것을 엄밀한 자연적 사실로 단정하고, ‘이성과 법의 힘으로’ 최대 행복(쾌락, 혹은 고통의 부재)을 실현할 수 있는 사회 구조의 성립을 입법과 정책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제시한다. 정부의 존재 목적이자 정책 결정의 제1원리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고, 그 목적의 실현을 위한 필수 불가결한 토대는 법의 모든 영역을 망라하는 체계적 성문법전, 벤담이 ‘파노미온(Pannomion)’이라고 부른 것이다. 이러한 그의 사업은 18세기 계몽주의를 현실 정치에서 실현하려는 열망의 소산이었다.

제러미 벤담, 단계별 읽기:
step1,2,3 step1 step2 step3

벤담 공리주의의 정수는 『도덕과 입법의 원칙에 대한 서론』(이하 『서론』)에 담겨 있다. 이 책에서 우리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사상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단정적 표현과 만난다. “인간은 쾌락과 고통의 노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인간은 실로 얼마나 복잡한 심리를 가진 동물인가? 그런 인간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것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러나 벤담은 쾌락과 고통이 인간의 모든 생각과 행동을 지배한다고 말한다. 인간의 행복은 그저 쾌락을 늘리고 고통을 줄이려는 안간힘을 통해 얻어지고, 인간 행동의 옳고 그름에 대한 궁극적 기준도 그 행동이 인간의 행복에 이바지하는 바에 달려 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많은 독자들은 크게 실망할 수도 있다. 인간이 쾌락과 고통의 노예라는 말도 그렇고, 인간의 행복이 고작 쾌락과 고통의 플러스마이너스일 뿐이라는 생각도 영 탐탁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 아니다. 『서론』은 연속적이고 긴밀히 연결된 세 부분, 즉 공리주의 원칙에 대한 해설(1~4장), 인간의 심리와 행동에 대한 분석(5~12장), 형벌에 대한 이론(13~17장)으로 구성된다. 백미는 단연 두 번째 부분이다. 벤담은 쾌락과 고통의 수많은 종류와 그 각각에 대응하는 인간의 욕망, 인간의 감수성에 영향을 주는 다양한 상황, 인간의 행동을 자극하는 동기와 성향 전반을 살피면서 인간의 본성 혹은 기본 심리에 대한 정밀한 분석을 시도한다. 이 부분을 읽고 나면, 실망감은 다소 줄어들 것이다. 그에게도 인간은 그렇게 단순한 동물이 아니며, 그런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특히 법률과 제도를 통해 인간의 최대 행복을 도모해야 할 입법자나 정책 결정자는 인간의 본성 혹은 기본 심리에 대한 엄밀한 지식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어쩌면 일반인을 위한 교양서라기보다는 입법자나 정책 결정자를 위한 지침서의 성격을 가진다. 그럼에도 공리주의 원조로서의 가치는 불변한다. 기본적으로 공리주의자는 인간이 무수한 원천에서 쾌락을 얻을 수 있다고 가정한다. 하지만 모든 쾌락이 동일한 가치를 갖는다고 말한 공리주의자는 드물다. 『공리주의』에서 존 스튜어트 밀이 의도한 것 중 하나는, “일부 무지한 사람들”의 오해를 불식하는 것이다. 가장 심각한 오해는 쾌락의 양만을 중시하는 공리주의로는 쾌락의 질적 우열과 인간적 품위를 논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이런 오해를 반박하는 맥락에서 나온 유명한 구절이 “만족스러워하는 돼지보다 불만족스러워하는 인간이 되는 것이 더 낫다. 만족해하는 바보보다 불만을 느끼는 소크라테스가 더 낫다”이다. 앞 문장은 쾌락의 추구에서 인간적 품위의 중요성을, 뒤 문장은 육체적 혹은 저급한 쾌락에 대한 정신적 혹은 고상한 쾌락의 우월함을 함축한다. 밀은 옳고 그름의 궁극적 판단 기준에 대한 오랜 소모적 논쟁을 해소할 최선의 대안으로서 벤담의 공리주의를 계승하지만, 인간적 품위와 자기 발전을 도모하는 정신적 쾌락에 집중함으로써 독자적 영역을 개척한다. 벤담의 『서론』과 밀의 『공리주의』는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인간의 공통적 본성과 옳고 그름에 대한 동일한 판단 기준을 설파하면서도, 전혀 다른 차원에서 전혀 다른 스타일의 논의를 전개한다. 분명 밀의 『공리주의』는 폭넓은 대중에게 공리주의를 훨씬 더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만든 공로가 있다. 그러나 스타일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서, 둘 사이의 명백한 대척점과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를 찾아보고, 누가 더 인간의 본성에 관한 진실에 가까이 근접했는가를 따져 보는 과정은 특별한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도덕과 입법의 원칙에 대한 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