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싱어는 1946년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에서 태어났다. 유대인인 그의 부모는 오스트리아 빈에 살다가 오스트리아가 나치에 점령되자 1938년 오스트레일리아로 이주했다. 그러나 나치에 잡혀간 그의 친가 쪽 조부모는 그 후 행방불명되었고 외조부는 나치 수용소에서 죽었다. 그가 안락사 문제 때문에 장애인 단체들로부터 나치와 다름없다고 비난받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런 가족사는 아이러니하다. 멜버른 대학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싱어는 1972년에 옥스퍼드 대학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는다. 그의 철학은 이때의 지도 교수인 R. M. 헤어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싱어는 미국의 뉴욕 대학에서 잠시 초빙 교수를 지낸 후 고향인 멜버른의 모나쉬 대학에서 1999년까지 교수로 재직했다. 그 후 미국의 프린스턴 대학 교수로 옮기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그의 철학에 반대하는 사람들로부터 살해 위협까지 포함한 맹렬한 항의를 받았다. 그는 현재 프린스턴 대학와 멜버른 대학 교수를 겸직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몇 차례 방문하였고, 2007년에는 다산 기념 철학 강좌의 강사로 초청되었으며 그 결과는 『이 시대에 윤리적으로 살아가기 — 현대 사회와 실천 윤리』로 출간되었다
그는 여러 철학자들로부터 살아 있는 철학자 중 세계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철학자로 뽑히며 동시에 가장 위험한 철학자로 꼽힌다. 그 이유는 그의 주저 제목이기도 한 ‘실천 윤리학’이 뜻하는 것처럼 일상생활에서 마주치는 문제들에 윤리적이고 철학적인 논증을 적용하는 것이 그의 주된 탐구 영역이며, 그중에서도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생명과 죽음의 문제에 대해 비록 논란이 되더라도 자신의 입장을 명확하게 표명하기 때문이다. 태아의 죽음(곧 임신 중절), 불치병 환자의 죽음(곧 안락사), 기아로 죽어 가는 빈민의 생명(곧 원조의 의무), 동물의 죽음(곧 육식과 동물 실험 문제) 등에 대한 윤리적 고찰이 그의 주된 관심사이다. 싱어는 임신 중절은 물론이고 불치병에 걸린 영아의 살해도 허용될 수 있다고 말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지 않는 것은 그들을 죽이는 것과 다름없다고 강조하며, 동물을 고기나 실험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인종 차별이나 성차별과 차이가 없다고 주장한다. 일반인의 상식과 많이 다른 이러한 주장들은 자주 논란의 중심에 놓이는데, 특히 그가 안락사 옹호를 통해 살 만한 가치가 없는 인간의 생명이 존재한다고 인정한 것은 장애인을 죽인 나치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강렬한 항의를 받는다.
싱어를 대중적으로 널리 알린 책은 1975년에 나온 『동물 해방』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채식주의자가 되었으며, 동물 해방 운동가들에게 이 책은 바이블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을 운동의 신조로 받아들이기보다 철학적 논증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동물 해방』보다는 『실천 윤리학』에서 시작하는 것이 효율적이다(『실천 윤리학』은 현재 3판까지 나왔으며 1판부터 3판까지 모두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다). 그의 기본적인 윤리적 원칙에서 출발하여 그 원칙이 동물 윤리뿐만 아니라 임신 중절, 안락사, 빈곤, 환경, 시민 불복종 등 여러 실천적인 윤리적 사례들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천 윤리학』은 대학에서 교양 윤리학의 교재로도 많이 사용되고 있지만 그리 만만한 책은 아니다. 분석적인 철학 방법론에 의해 쓰인 것이기 때문에 한 줄 한 줄 꼼꼼히 따라가며 읽어야 한다. 싱어의 기본적인 윤리적 원칙은 ‘이익 평등 고려의 원칙’이다. 이 원칙은 “도덕적 사고에서 우리의 행위에 의해서 영향을 받을 모든 사람들의 같은 이익들에 대하여 동등한 비중을 둔다”는 공리주의적 주장이다. 여기서 말하는 이익이란 대단한 것이 아니라 “고통을 피하고 먹고 자는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고, 아이들이 있을 때 그들을 사랑하고 돌보고 우정과 애정을 즐거이 교환하고, 타인들로부터 불필요한 간섭을 받지 않고 자신의 삶의 계획을 자유로이 추구하는” 이익이다. 각자 추구하는 이익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이 정도의 이익은 누구에게나 기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영향을 받을 사람이 누구든지 그 이익을 공평하게 고려해야 하는데, 피부색이 무엇이든, 머리가 좋든 나쁘든 똑같이 고려해야 한다. 가령 고통을 피하는 이익을 생각해 볼 때, 백인이라고 해서 흑인보다 더 고통을 많이 느끼거나 지능 지수가 높고 사회적 지위가 높다고 해서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고통을 더 많이 느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고통의 양이 다르면 다르게 취급해야 하므로 이익을 무조건 똑같이 취급하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똑같은 양의 고통이라면 누구의 고통이라고 해서 더 큰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이 원칙에 따르면 피부색이나 성별에 따라 이익을 다르게 고려하는 인종 차별주의나 성차별주의는 당연히 윤리적이지 못하다. 인종 차별주의나 성차별주의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인종이나 성별이 무엇이든 똑같은 기회를 주는 기회의 평등이 제시된다. 그러나 싱어는 기회의 평등은 매력적인 이념이 되지 못한다고 주장하는데, 단순히 기회만 똑같이 주는 것으로는 좋은 환경에서 좋은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에게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싱어에게 기회의 평등이란 곧 운 좋은 사람에게 상을 주고 운이 나쁜 사람에게 벌을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마르크스처럼 능력에 따른 생산과 필요에 따른 분배를 전적으로 받아들이자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유전된 능력 대신 필요에 따라 급여를 지불했을 때 이미 많은 공산 국가들에서 두뇌 유출이 일어나거나 열심히 일하려는 동기가 감소함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에게는 계층을 만들고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 본성이 있음을 인정한다. 따라서 인간 본성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가장 절실한 필요를 가진 사람보다는 타고난 능력을 가진 사람에게 더 많은 돈을 지불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능력은 상당 부분 운에 따른 것이므로 운이 없는 사람들에게 재분배가 이루어져야 한다. 단, 앞서 말했듯이 열심히 일하려는 동기를 빼앗을 정도의 재분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싱어의 이론은 이렇게 재분배를 주장하면서도 진화에 따른 인간의 본성을 존중하기 때문에 ‘다윈주의적 좌파’라고 부른다. 이 견해를 깊이 알고 싶은 독자는 『실천 윤리학』 외에 『다윈주의 좌파』를 읽으면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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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 평등 고려의 원칙에 따르면 영향을 받을 사람이 누구든지 그 이익을 공평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피부색이나 소득 수준과 상관없이 누구나 고통은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통을 피하고 싶은 존재는 사람뿐만이 아니다. 고통을 겪을 때 괴로움을 느끼며 피하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이 아닌 동물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어느 존재가 어느 인종이나 어느 성별에 속하느냐에 따라 그 존재의 이익을 다르게 고려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어느 존재가 어느 동물 집단에 속하느냐에 따라 그 존재의 이익을 다르게 고려해서는 안 된다. 어느 존재가 어느 동물 집단에 속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고려하는 것을 ‘종 차별주의’라고 하는데, 싱어에게 종 차별주의는 인종 차별주의나 성차별주의나 마찬가지로 근거 없는 차별이다. 종 차별주의라는 용어를 싱어가 처음 만든 것은 아니지만 이 용어는 싱어에 의해 널리 퍼지게 되었다. 싱어는 동물의 이익을 인간의 이익과 똑같이 고려할 것을 주장하지만, 동물도 인간처럼 학교에 다닐 수 있게 하고 투표권을 주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동물에게는 학교에 못 다니게 하거나 투표를 못 하게 해서 침해받는 이익이 없기 때문이다. 대신에 동물들도 고통을 피하고 먹고 자는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고 가족과 함께 보내고 싶고 타인들로부터 불필요한 간섭을 받지 않고 싶은 이익이 있다. 물론 종마다 그 이익의 정도가 다르기는 하지만 그러한 이익이 분명히 있는데도 동물이라는 이유로 그것을 침해하면 종 차별을 저지르게 된다. 과거의 가족 농장에서는 동물을 최대한 자연 상태에서 기르고 도살할 때도 고통을 최소화하고자 배려했기에 위의 이익이 존중되었다. 그러나 현대의 공장식 사육과 도살은 그런 이익을 깡그리 무시한다. 공장식 농장에서 싸게 공급된 고기를 찾는 소비자 역시 그런 이익 무시에 동참하는 것이다. 현대의 사육과 도살 환경을 고려해 볼 때, 싱어의 기준에서 윤리적인 소비자가 되려면 채식주의자가 되는 수밖에 없다. 『실천 윤리학』도 동물 윤리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이는 『동물 해방』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어진다. 이 책은 책상머리에서 쓰여진 여느 철학 책들과 달리 농장이나 실험실에서 동물이 학대받는 현실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어 읽기에 쉽고 그만큼 감흥도 크다. 레시피가 나오는 거의 유일한 철학 책이기도 하다. 싱어는 근년에 농부이자 변호사인 짐 메이슨과 함께 공장식 농장이나 잡식주의자, 선택적 잡식주의자, 채식주의자 등 다양한 식습관을 가진 가족들을 직접 탐방하여 쓴 『죽음의 밥상』을 내놓았다. 그리고 자신의 동물 해방론에 영향을 받아 동물 해방 운동에 뛰어든 헨리 스피라의 전기인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를 직접 집필하여 철학 이론이 어떻게 운동으로 실천화되는지 잘 보여 주고 있다. 또한 단독 저서는 아니지만 『동물과 인간이 공존해야 하는 합당한 이유들』에서는 이론적인 토대와 동물의 비참한 현실 이외에 동물 해방 운동가들을 위한 구체적인 실천 전략까지 소개하고 있다. 『실천 윤리학』과 『동물 해방』이 기본서이긴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들에 관심이 있다면 이러한 책들부터 읽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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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윤리 문제에 접근하는 싱어의 방법론 역시 직관이나 감정이 아닌 분석적 방법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생명은 신성하다는 전통적인 직관이나 갓난아이가 가엽다는 감정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죽여서는 안 되는 이유를 찾아 죽음의 대상이 되는 존재들에 적용해 보는 것이다. 그는 호모 사피엔스와 인격체를 구분하는데, 호모 사피엔스는 생물학적으로 인류라는 종에 속하는 구성원을 가리키고 인격체는 자기 동일성과 미래에 대한 기대를 가지는 존재를 가리킨다. 인간을 죽이면 안 되는 이유가 단지 호모 사피엔스의 구성원이기 때문이라면, 그것은 백인이거나 남성이기 때문에 다르게 대우해도 된다는 차별주의와 다를 바가 없다. 인간을 죽이면 안 되는 이유는 그 존재의 자기 동일성과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꺾기 때문이다. 그런데 호모 사피엔스라고 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인격체는 아닌 태아나 영아 그리고 식물인간에는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 이 이유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임신 중절이나 영아 살해, 식물인간의 안락사는 허용된다. 또한 고통이 심한 회복 불가능한 환자는 비록 인격체이지만 죽고 싶다는 욕구가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므로 역시 죽이는 것이 문제되지 않는다. 이렇게 봤을 때 싱어가 비록 안락사를 지지하지만 삶에 대한 의지가 있는 장애인을 죽이는 것은 그가 옹호하는 형태의 안락사가 전혀 아님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임신 중절이나 안락사에 대한 싱어의 견해는 『실천 윤리학』에서도 펼쳐지지만, 『삶과 죽음』에서 아주 구체적으로 다루어진다. 이 책들에는 위와 같은 논변 외에 생사의 문턱에 있는 사람들의 현실이 생생하게 그려져 의료적인 판단을 하는 데 도움을 준다. 기아에 시달리는 제3세계 빈민을 원조해야 한다는 주장도 싱어를 영향력 있는 윤리학자로 주목받게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빈민에게 연민을 보내며 돕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하면 칭찬을 받아도 그러지 못했다고 해서 비난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싱어는 원조는 의무라고 주장하는데, 이런 생각은 『실천 윤리학』 외에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나 『세계화의 윤리』에서 자세하게 읽을 수 있다. 책 제목이기도 한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는 원조가 왜 의무인지 잘 보여 주는 비유이다. 우리가 물에 빠진 아이를 충분히 구할 수 있는데도 구하지 않으면 비난을 받는 것처럼, 기아에 시달리는 빈민들은 약간의 원조만으로도 목숨을 구할 수 있으므로 원조는 자선이 아니라 의무라는 것이다. 싱어의 석사 논문 주제는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였으며, 도덕적 삶에 대한 그의 관심은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는 그 제목에서 자기 계발서 냄새가 나는데, ‘어떻게 살아야 도덕적인가?’ 혹은 ‘올바른 삶이란 어떤 것인가?’라는 주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읽어 보기 바란다. 『실천 윤리학』의 한 장에서도 다루고 있는 주제이다. 윤리의 생물학적 토대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앞서 소개한 『다윈주의 좌파』 외에 『사회생물학과 윤리』를 읽으면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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