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고딕 호러, 폭력과 혐오의 맨얼굴"
부에노스아이레스 지하철에는 모두가 아는 '지하철 여인'이 있다. 몸 전체에 심한 화상을 입어 온통 녹아내리고 일그러진 모습. 그는 지하철 칸을 돌며 승객의 뺨에 입을 맞추고 돈을 구걸한다. 많은 이들은 비명을 지르거나 바로 열차에서 내려버린다. 그의 몸에 불을 지른 이는 남편이었다. 남편은 태연하게 아내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인 것이라고 둘러댔다. 대중의 반응은 "아랍이나 인도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 왜 아르헨티나에서 벌어지냐" 정도였다. 비슷한 사건이 연이어 벌어지자 스스로 분신 의식을 거행하는 여성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불에 타 괴물처럼 변하면 적어도 여성 인신매매는 없어지지 않겠냐는 자조와 함께.
표제작 '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은 실제 아르헨티나에서 일어난 방화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불가사의한 실종과 잔혹하게 난도질당한 시체, 마약에 중독된 아이들, 방치된 폐가… 현대 아르헨티나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12편의 소설 속에는 작가가 마주한 아르헨티나의 어두운 이면이 있다. 국가가 자행한 폭력, 여성 혼자서는 밤 거리에 나설 수 없는 도시, 경찰에 신고해도 아무 소용 없는 사회, 일상에 녹아 있는 가난과 중독, 광기와 혐오는 소설의 원천이었다. 지옥 같은 일상에 미신과 주술 의식이 지배하는 남미 특유의 정서가 혼재되어 '라틴아메리카 고딕 호러'라는 독특한 분위기가 탄생했다.
생존을 위협하는 폭력에 어떻게 우아하고 조용하게 대처할 수 있겠는가. 작가 마리아나 엔리케스는 "장르 또한 하나의 언어"라고 말하며 호러라는 장르로 폭력에 맞선다. 더욱 극단적이고 더욱 파국적인 방식으로 공포의 방향을 전복하면서, 그 악행이 한 인간의 세계를 얼마나 파괴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내가 어둡고 음울한 소설을 쓰는 이유는 세상에서 괴물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익히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며 "공포, 그것은 거의 대부분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공포"라는 고백과 함께. 록산 게이가 "좋은 공포 이야기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예시하는 단편들"이라는 말과 함께, 패티 스미스가 “평범한 장소의 공포를 깊이 기록하는 소설”이라 추천사를 보내며 함께 읽은 작품이다.
- 소설 MD 권벼리 (2020.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