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미루어왔던 충치 치료를 받고 있다. 치과만큼 가기 싫은 곳이 또 있을까 싶게 치과 치료는 공포스럽다. 외면해봤자 호전될 가능성은 결코 없다는 점에서 충치를 인생의 축소판으로 간주해도 될까. 몇 회에 걸쳐 신경 치료를 받았는데 오래 방치한 탓으로 신경을 감싼 세포들이 석회화 되어버려 치료가 까다롭다는 지청구를 들어야 했다. 그 말이 내게는 삶에서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겁내지 말고 정면으로 돌파해야 해결할 수 있다는 말로 확대되어 들렸다.
세번째 신경 치료에서 의사는 ‘파일’이라 불리는 가느다란 도구를 치아에 꽂은 채 방사선 사진을 찍게 했다. 모니터에 띄워진 내 치아에 가늘고 길쭉한 침 같은 것이 두 개 꽂혀 있었다. 신경의 위치와 방향을 정확하게 파악할 때 이렇게 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놀랍다. 저 미세한 선들이 고통의 근원이라는 사실이. 의사는 모니터를 확인한 다음 다시 뾰족한 기구로 치아 깊은 곳을 찔렀다. 원인을 정확하게 찾아 인정사정 보지 않고 후벼 파지 않으면 통증을 없앨 수 없다. 그것이 두렵다면, 혹은 우물쭈물하다가 기회를 놓친다면, 발치밖에 방법이 없을 것이다. 다음 순서는 이가 뽑혀 나간 자리를 텅 비워두고 상실을 감내하거나, 인공 치아를 이식하는 것일 테고. 마취가 된 상태라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고 다만 약간의 압력이 전달될 뿐이었지만 지레 겁을 먹고 자꾸 움찔거리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비로소 해결을 향해 한 발 내딛는 안도감과 뿌듯함이 느껴졌다면 내가 너무 얄팍한 사람일까.
애초 치료를 받으려 했던 치아는 사실 다른 것이었다. 막상 치과에 가보니 지금 치료받고 있는 치아가 더 많이 상해 있었고, 그 양옆의 치아도 이미 상한 상태였다. 이것들의 치료가 끝나면 애초 걱정되었던 치아의 치료를 시작한다고 했다. 예상을 벗어난 진단과 치료 순서인 셈이다. 닮지 않았나, 인생과?
통증이 느껴질 때까지 방치하면 그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다는 점에서 몸은, 치아는 참으로 정직하다. ‘다정’은 그것을 몰랐을까. 그럴 리가. 치료가 마무리되면 취약해진 치아를 잘 보존하고 돌보면서 지내야 할 터이다. ‘다정’도 그쯤은 알게 되었을 것이고.”
한동안 잡지 만드는 일을 했다. ‘국외자들의 각별한 사랑과 좌절과 열망에 대한 공감의 권역’에 주목하고 있다. 2018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저서로 소설집 『다섯 개의 예각』, 『빨간 치마를 입은 아이』, 장편소설 『오로라 상회의 집사들』, 『디어 마이 송골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