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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대면하는 사회와 의료 체계는 당사자의 의중과는 상관없이 상대를 비장애의 상태로 만들고 싶어 한다. 그것은 바람의 상태로 끝나지 않고 곧잘 실행에까지 옮겨지며, 그 끝에 상대의 감동한 얼굴까지 기대한다. 그러나 선천적 뇌성마비 장애인, 장애 및 트랜스 활동가이자 시인인 일라이 클레어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손상된 나의 뇌세포를 치료할 수 있다고 해도 마다할 것이다. 굳고 경련하는 근육이 없는 나를, 어눌한 발음이 없는 나를 상상할 수가 없다. (…) 장애가 없다면 우리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장애와 더불어 자아를 형성해 온 이에게서 장애를 소거했을 때, 그는 무엇으로 남는가?
일라이 클레어는 치유와 회복 이데올로기가 내포한 정치성을 파고들며 장애와 장애화 문제에 대해 전복적인 질문을 던진다. 인격성은 언제 인정되는가. 결함은 왜 문제시되는가. 어떤 낙인은 문제의 본질 없이 낙인만이 문제이지 않은가. 그 자신의 개인적 경험과 그가 목격하거나 사유한 환경 문제를 중첩시키며 클레어는 논의를 진척시켜 나간다. 그의 논의가 직선으로만 뻗어나가진 않는다. 백인, 선천적 뇌성마비 장애인, FTM 트랜스젠더. 자신의 정체성을 입체적이고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그는 다양한 정체성의 사람들이 치유와 맺는 관계에 대해 살피며 조심스러운 해석을 시도한다. 그의 통찰은 당차되 사려깊다.
자신의 개인적 고통,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대항, 환경과 인간 간의 연결에 관한 이야기가 서로 엮여 독특한 방식으로 진행되는 이 책은 형식과 내용을 아울러 새로운 사고를 자극한다. 빛나는 통찰, 아름다운 글, 삶에서 길어올린 응축된 에너지. 그의 전작 <망명과 자긍심>에 이어 입에서 입으로 두고두고 추천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