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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지에 몰린 사람은 도피처를 찾는다. 도망칠 곳이 현실에 없다면 환상 속으로라도 숨어야 한다. '만 년 동안 살았다'라는 환상은 8살부터 조현병 엄마를 돌봐야 했던 저자가 만들어낸 도피처다. 조현병 엄마의 '미친' 세계와 현실의 '보통' 세계 사이를 오가는 일상을 견뎌내느라 유년기에 이미 거대한 삶의 피로를 감당해야 했던 저자는 스스로를 만 년 동안 살아온 존재로 여겼다. 나약한 사람 아이가 아니라 만 년을 산 신이기에 이런 고통쯤은 모두 견딜 수 있다고 자신을 다독였다.
그러나 그는 어쩔 수 없이 8살 아이였고, 만 년 동안 살아온 존재로 지내는 동안 유년기를 모두 잃었다. 아이가 아이로 살아야만 하는 기간을 건너 뛰어 버리면 반드시 후유증이 온다. '만 년의 아이'이기를 그만둔 뒤, 저자에겐 신체적, 정신적 문제들이 덮쳐온다.
어린 돌봄자에 관한 사회적 인식은 기특하거나 안쓰럽다는 '인상' 정도에 머무른다. 부모를 돌보는 아이가 몇 명인지, 정확한 수치조차 집계되어 있지 않다. 대책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 책은 돌봄 당사자인 저자가 직접 살아낸 삶을 선명히 보여준다. 산뜻한 문체로 덤덤히 풀어내는 도망칠 곳 없는 삶의 풍경 속에서 그는 "누구라도 좋으니 도와줘"라고 외치지만 현실에선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아빠의 아빠가 됐다>의 저자 조기현은 추천사에서 이렇게 말한다. "돌봄이 한 사람의 삶을 통째로 우그러뜨리는 압력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