맬버른의 한 거리, 페스티벌의 현장. 흔한 심벌즈조차 치지 않고, 느리게 걷기만 하는 할머니들과 '셜리'는 마주쳤다. "더 셜리 클럽 빅토리아 지부." 할머니들의 가슴마다 달려 있는 명찰엔 셜리 J, 셜리 M, 셜리 O라고 써있다. 한국에선 스무 살의 설희였던 '셜리'는 운명처럼 할머니들의 행렬을 따라 나선다. "내 이름도 셜리예요" 외치고 싶은 마음에 따라간 호프. 그곳에서 셜리는 목소리가 또렷한 보랏빛인, 절대 셜리일 리 없는 S와 우연히 마주치고 그와 친구가 되며 이후 우여곡절 끝에 임시-명예-회원으로 '더 셜리 클럽'에 가입을 성공한다.
요시다케 신스케가 상상한 '있으려나 서점'처럼, 읽는 내내 '있으려나 더 셜리 클럽' 하고 상상하게 된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살기 좋은 도시라는 멜버른에서 펼쳐지는 셜리의 워킹홀리데이 여행기. 스콘을 잘 만드는 셜리 페이튼, 스키를 즐기는 순두부를 닮은 셜리 모튼, 치즈를 사랑하는 셜리 벨머린, 우리의 셜리가 울 때 자수 손수건을 챙겨주는 셜리 마르테이즈, 울루루에서 숙박을 운영하는 셜리 넬슨. 그들은 누구세요? 셜리예요. 나도 셜리랍니다. 농담을 주고받으며 재미와 음식과 우정을 나눈다. 더 셜리 클럽이 우리의 셜리를 돕는 이유는 오직 셜리가 셜리이기 때문이다. 내가 나이기 때문에 나를 아끼는 사람들이 있는 곳, 동화 속 세상 같다고 하지만 어쩐지 그 동화를 자꾸 믿고 싶어진다.
<체공녀 강주룡>, <마르타의 일> 등의 작품을 통해 질문을 던져온 작가 박서련이 조금은 결이 다른 이야기로 독자를 찾았다. 유행이 지난 이름이라 할머니들로만 이루어진 '더 셜리 클럽'의 환대 안에서 셜리는 여행을 계속한다. 혼혈인지 이민자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조차 잘 모르는 S의 보랏빛 목소리에 반해 무작정 용감해지는 셜리의 모험담은 무해하고 산뜻하고 경쾌하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고 우리를 사랑해주는 사람들 안에서 우리가 된다. 네가 찾고 있는 사람에게 네가 주는 사랑이 그 사람을 완성해 줄 거다."(199쪽)라는 셜리 넬슨의 조언처럼, 우리는 사랑 안에서 비로소 내가 된다. <우리들> 윤가은 감독, 시인 박준 추천. 소소한 서운함도 모두 추억이 되고 하루하루가 선명한 색으로 기억되는 그 시간들, 여행의 나날이 그리워지는 사랑스러운 소설.